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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모임 라온제나] '살림' 의료사협 견학 후기 - 생각, 자본, 노동이 협동하는 곳
작성자 : 고지선, 조회수 : 346, 작성일 : 2020-07-22

* 고양민우회 회원 소모임인 라온제나가 올해 '우리동네 페미니스트'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하고 있습니다. 첫 견학 후기를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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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페미니스트' 사업을 드디어 시작했다. 우리지역에도 페미니스트들이 만나고 활동하는 공간, 공동체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다. 일단은 공동체가 무엇인지, 어떤 형태가 가능한지를 알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10여년이 된 여성주의를 표방한 의료협동조합 '살림' 견학을 첫 일정으로 잡았다.

문제의식 - 아프면 가족이 있어야?

9명 비혼 페미니스트가 맨 처음 가진 문제의식은 '아프면 가족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러니 결혼을 하라는 가족과 사회의 압박을 받다보니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질문을 하게 된다. 가족이 아픈 사람을 돌봐야 한다는 건 병원비, 간병의 책임을 모두 개인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그렇다고 국가가 다 해야한다는 게 아니라 공동체에서 해결할 수 있는 건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여성답게, 남성답게'라는 성역할 고정관념은 여성을 움츠들고 몸을 움직이지 않게 하고, 남성을 자신의 몸에 맞지 않은 채 살아가게 할 가능성이 크다. 돌봄은 누가 해야 하는가? 수명은 늘어나지만 죽을 때까지 건강하게 사는 삶이 많아지는 게 아니라서, 돌봄은 점점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돌봄은 여성의 일로만 여겨지지만, 누구나 자신을 돌보고 남을 돌볼 수 있는 건 아닐까. 돌봄은 개인이 모두 책임질 수 없지만 그렇다고 국가가 공공기관이 다 떠안을 수도 없다.

그렇다면 공동체가 해 보면 어떨까? 살림에서는 이런 질문을 한다.

'내가 지금 갑자기 집 근처에서 쓰러졌을 때, 연락해서 5분 안에 달려와 줄 사람이 있나?

난 없다. 연로하신 부모님은 달려올 수 없는 신체상태, 남편은 서울에서 일을 하고 있으니 낮 시간이라면 당장 출발은 하겠지만 내 앞에 나타날 순 없다.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인데, 특히 노인들에게 많이 발생할 수 있는 일인데, 아무런 대책도 없이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돌봄을 주제로 한 지역사회 공동체가 있는 게 소중하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진 상황에서 '혼자서만 건강할 수 없다'는 말은 이제 너무 당연하게 와 닿는다.

협동조합 - 어떤 형태로 가능할까

한국에 의료협동조합이 25개가 있다고 한다. 94년에 안성에서 제일 먼저 생겼는데, 형태는 조금씩 다르다고 한다. 의사와 사무장 중심으로 운영되는 곳도 있지만, 살림은 300여 명의 조합원이 시작해 지금은 3천 명이 넘는 규모의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으로 거듭났다. 살림은 3년 동안 준비해서 올해 총회에서 선포한 '살림 10원칙'이 있다. 여성주의적 시각과 협동조합 고유의 정신이 잘 맞닿아 있는 것 같다. 살림에서는 신입 조합원에게 첫 문자를 보낼 때 '가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신에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쓴다. 협동조합은 누가 대신해서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직접 참여해서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사회에서 이사들은 말로 결정하고 직원들에게 일을 시키지 않는다. 조합원들이 기획하고, 대의원으로 출마하고, 행사가 있을 때 책상을 비치하고 청소하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생각, 노동, 자본의 협동' 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다. 설명해 주신 살림 교육팀장님이 가끔은 '이들은 돈도 안 받고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하는데, 난 돈을 받고 뭐하는 거지?'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을 정도다. 돈을 받고 일을 하니 더 일을 많이 해야 할 것 같은 압박, 잘 해야 할 것 같은 부담을 느낄 수도 있겠다며 공감이 갔다.

오랫동안 조직 전반에 '적극적인 참여'의 분위기가 잘 살아있는 것 같았다. 그 원동력을 하나로 꼽을 순 없겠지만, 팀장님은 활동조합원 FGI 결과를 들려주었다. 2년 간 회원들을 만나서 집중 인터뷰를 해서 공통의 키워드를 꼽아보니 1) 환대 2) 노동참여 3) 배움 이었다. 처음 왔을 때 반겨주니 좋고, 내가 노동으로 기여할 수 있어서 좋고(아주 작은 노동이라도), 여기에 오면 배울 수 있는 게 있어서 좋다는 거다. 이래서 이곳을 '더 많은 협동이 일어나는 곳,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곳'이라고 표현하는가 보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조합원 3천 명이 다 페미니스트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페미니즘도 다양한 형태가 있을 뿐더러, 규모가 커지면 당연히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게 되니 갈등은 존재한다. 이럴 때 살림 10원칙이 중요한 게 아닐까. 누군가의 선의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비전과 가치를 더 촘촘하게 만들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나누게 되는 것 같다.

운영

좋은 뜻으로 시작했다가 수익이 나질 않아서 접는 경우가 많다. 이익을 많이 내진 않아도 빚이 계속 쌓이면 안 된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여성주의를 말하고 실천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비건 식당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많이 했지만, 잘 되는 줄 알았는데 어느 날 문을 닫는 동네 가게들을 생각하면 엄두가 나질 않았다. '살림'은 살림의원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치과, 부인과, 정신의학과까지 분야를 확장했다. 특히 치과는 의료 기기가 너무 비싸기 때문에, 의료생협은 물론 일반 치과도 빚 없이 시작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만약 빚을 내고 의료 기기를 내고 치과를 차렸다면, 이자가 불어나니까 이제부터 환자가 돈으로만 보일 가능성이 커진다. 과잉 진료가 많은 이유다. '살림'은 그래서 빚 없이 치과를 시작하는 것을 목표로 조합원을 모으고 돈을 모았다고 한다.

요양원도 하고 싶지만 법으로 자가 소유 건물이 있는 경우만 가능해서 지금은 데이 케어 센터, 돌봄 사업소, 방문 요양 사업 등을 구상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 정신의학과는 한 달 전에 예약을 해야 하는데, 현재 2명인 의사를 늘려야 할 정도는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약물보다는 상담 위주라서 선호하는 환자들이 많다고 한다. 그동안 시작했다가 접은 사업도 많다고 한다. 지속가능하게 운영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규모를 더 늘리는 데 아주 신중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살림'은 300여 명 조합원으로 시작해서 같은 해 살림의원을 개원하고, 1년도 안 되어서 조합원이 천 명을 넘었다고 한다. 조합원들이 열정적으로 조합원을 가입시키고 뛴 덕분이다. 나도 만약 뭔가를 우리 지역에서 시작한다면 몇 명이나 조합원 혹은 회원을 가입시킬 수 있을까 생각해 봤는데... 막막하다. '살림'이 자리한 은평구의 시민사회 역량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여성주의 실천

여성주의 의료협동조합을 표방한다고 해서 '쎈' 기운을 풍기지 않을까 했다. 2층에 있는 살림 의원에도, 10층 사무실에도 일하는 사람들이 여성이 많았다. 의원의 간호사, 의사가 아닌 협동조합 직원들은 편하지만 깔끔한 옷을 입고 있어서 그곳의 일하는 분위기가 어떤지 짐작하게 했다. 2층 의원에 '살림 10원칙'이 크게 붙어 있었지만, 편견처럼 쎄 보이지 않았다. 강한 언어로 가치를 표현하는 게 아니라 약자의 편에서 보고, 평등해야 건강하다, 누구나 돌볼 수 있다는 식으로 여성주의가 곳곳에 잘 스며들어 있었다. 의원 내 화장실 표지만 봐도 알 수 있다. 깊게 고민하고 의견을 나눈 끝에 나온 결과라고 한다. 여성전용화장실과 가족화장실/공용화장실로 구분한다. 개별 중립화장실을 만들 지는 못하는 상황에서 성역할 고정관념, 정상성에 기대지 않은 결정을 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였다. 어린 딸을 데리고 온 아빠는 어느 화장실에 가야할까하는 고민을 없애기 위해 가족화장실 개념도 도입했다고 한다. 칸 수로 보면 여성이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훨씬 많은 것도 눈에 띈다. 화장실은 굉장히 정치적인 공간이다. 그동안 여성, 남성 화장실로만 나눠졌는데, 여성들이 화장실 사용시간이 훨씬 많은데도 여성과 남성 화장실 면적이 똑같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장애인들이 휠체어를 타고 사용하기엔 너무 좁아서 휠체어 사용 장애인들은 외출했을 때 화장실을 가지 않으려고 물이나 음식을 먹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공용화장실이 있기 때문에 트렌스 젠더나 짧은 머리의 여성들도 어느 화장실을 가야할지 고민하지 않고 편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생리컵 사용자들은 화장실 변기 옆에 개수대가 있어야 생리컵을 빼서 씻고 다시 쓸 수 있는데 1-2칸이라도 개수대가 설치되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다.

 




 
가치에 닿기 위해 늘 노력하고 있었다. 여전히 신생조직이 가지는 역동성이 있는 것 같았다. 9명의 질문으로 시작해 지금까지 수 백 번의 회의와 모임이 있었다. 당장의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아서 고민과 갈등도 있었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협동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고마웠다. 소중한 '살림' 같은 곳이 전국에 더 많이 생기길 바란다. 당장 우리 지역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