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담플러스] 인터뷰: 내가 정말 비겁한 사람을 무서워하고 있었네! (달팽이) ①

하담
2023-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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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담플러스]에서는 하담을 퇴소한 하담인들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인터뷰, 모임 후기 등을 통해 하담 이후의 삶을 살피며 유대와 연대의 끈을 이어가는 한편, 쉼터 너머를 고민하는 여정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중학생이었던 달팽이님은 대학생이 되어 하담을 떠났다.

그녀는 독립생활 대신 자립관을 선택했는데, 하담에서도 처음 시도해 본 자립의 형태였다. 보통 지자체의 위탁으로 운영되는 ‘청소년자립관’은 시설 퇴소인을 대상으로 생활 공간을 제공하며 2년간 자립 준비를 지원한다.


달팽이님이 자립관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주거 공간으로 이주를 준비하던 즘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영화를 사랑하던 그녀는 연기자를 꿈꾸기도, 감독을 꿈꾸기도 하며 이런저런 시도 속에 일단 부딪혀 보는 강단을 보여줬다. 실패와 포기가 쌓이기도 했지만, 영화판에서 뭔가를 하고 싶다는 꿈은 내려놓지 않았던 그녀가 관련 학과에 진학해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독립과 졸업을 앞둔 그녀와의 대화는 대학 생활을 하며 느꼈던 친구들과의 거리감, 최근 출소한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며 겪게 된 변화 등으로 이어졌다. 이야기가 길어져 두 편으로 나눠 싣는다.

 

Q. 하담에서는 처음으로 퇴소 후 자립관에서 2년간 생활해 보는 선택을 했어요. 달팽이님이 잘 지내시는 것을 보고 다른 분들께도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었어요. 오랜 하담 생활을 정리하고 자립관으로 거주 공간을 옮기셨는데 처음에 기분이 어땠는지 궁금하네요.

 우선은 하담은 완전 북적북적했는데, 자립관은 너무 조용하고... 하담은 가만히 있으면 별소리가 다 들리는데 자립관은 가만히 있으면 제소리밖에 안 들리는 거예요. 그래서 공백이 좀 많이 느껴졌던 것 같아요. 그리고 사무실이 분리되어 있으니까 조금 더 뭔가 혼자 있는 느낌이 컸던 것 같아요.

 

달팽이님이 계셨던 자립관은 한 지역의 빌라 몇 채를 사용하면서 그중 하나는 운영자 사무실로 사용하고, 나머지 집들은 주거 공간으로 사용하더라고요. 한 집에 몇 명이 함께 지냈나요? 적응하기 괜찮으셨나요?

같은 호수에 방이 세 개가 있어서 세 명이랑 지냈는데 제가 제일 큰 방이었어요. 제가 하담에서 6년 지내면서 단체 생활을 하다가, 방을 같이 쓰지도 않으니까 적응하는 데는 하담보다는 편했던 것 같아요. 하담에서는 3~4명이 같이 방을 썼는데.. (웃음)  하담과 가장 큰 차이는 뭐였나요? 집안일! 집안일이 정말 본격적으로 내 일이 됐구나. 정말 하담에서 하는 화장실 청소는 청소가 아니었구나. 그냥 물질. (웃음) 집안일이 정말 가장 큰 차이점이었던 것 같아요.

 

Q. 자립관에서 2년을 지내셨는데 지난 2년을 돌아보면 어떤가요?

저는 2년이라는 시간을 좀 1년, 1년으로 나눠야 할 것 같은 게... 첫 1년은 정말 엉망이었고, 다음 1년은 정말 괜찮은 사람 같았어요.  “정말 괜찮은 사람”이 된 계기가 있나요? 기는 좀 많이 맞물려 있었는데.  아버지가 출소를 했고, 그다음에 딱 뭔가 내가 뭘 하고 살아야 되지? 라는 마음이 정말 크게 들었을 때가 있었는데, 그 이유는 모르겠는데 그냥 갑자기 스멀스멀 그런 생각이 너무 많이 들었고... 그리고 이제 (자립관) 퇴소가 다가오니까 마음이 조급해진 게 그것도 큰 것 같아요. 그 1년 동안.

 

 전과 비교했을 때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됐다고 느꼈다는 거죠?  맞아요. 저는 사실 진짜 모든 면에 있어서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게... 아, 근데 나아졌다기보다는 원래 이랬는데 중간에 50을 갔다가 갑자기 0으로 떨어졌다가 그러다가 다시 50으로 올라온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뭐 미래에 생각하는 것도 그렇고, 그냥 저 자신에 대한 것도 그렇고 그냥 여러 가지 방면으로 나아졌던 것 같아요.  0으로 떨어졌다고 생각한 이유는 뭐예요? 떨어졌던 게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너무 정신 상태가 안 좋아졌어요. 그때는 너무 우울했고 너~무 불안했고, 현실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고, 그냥 뭔가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제일 컸던 것 같아요, 저는. 그래서 저는 그때 진짜 다 도망쳤어요. 학업도 도망치고 일도 하긴 했지만 그래도 꽤 도망을 쳤고... 평소에 옛날부터 알던 친구 관계에서도 도망을 쳤고 그냥 모든 거에서 다 도망쳤어요, 그때는.

 

아빠의 출소는 어떤 면에서 영향을 미쳤나요?  저는 아빠 출소 관련한 거는 항상 머릿속에 있었거든요, 언젠간 나오시니까. 그때도 생각하다가 이제 정말 출소가 얼마 남지 않았겠는데? 하고 제가 한번 판결문을 다시 받아서 본 적이 있어요. 언제 나오시는지.. 그런 거 보니까 진짜 머지않은 거예요. 그때 생각했어요. 근데 내가 지금 이런 정신 상태로 아빠가 출소했다가는 까딱하면 잘못될 수도 있겠다. 내가 지금 너무 정신 상태가 안 좋은데 아빠가 나한테 옛날같이 똑같이 한다면 난 똑같이 너무 힘들 것 같고, 상처받을 것 같은데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저는 좀... 그러면서... 그렇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러면 얼른 이 정신 없는 상태를 청산하고 좀 발전적이어야 되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Q. 이제 진짜 혼자 살게 되었네요. 어때요?

저는 너무 좋고, 기대하는 게 있는 게 어렸을 때 친구네 집 가는 걸 진짜 좋아했거든요. 근데 한 번도 친구를 우리 집에 초대를 못 했어요. 그래서 하담에서도 소원이 애들이 하루 다 나가 있고 친구들 초대하겠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소원을 바랐는데. (웃음) 근데 자립관에서도 초대를 못 하잖아요. 드디어 집에 친구를 초대할 수 있어서 진짜 제일 기뻐요. 저 정말 하고 싶었어요. 

그게 제일이고, 그리고 뭐 생활 방면은 솔직히 지금이랑 별다를 게 없거든요. 지금도 룸메랑 거의 마주치는 시간대가 달라서 혼자 있는 건 비슷할 것 같은데, 화장실은 같이 있었잖아요. 근데 제가 가고 싶을 때 못 갈 때가 있어요. 그리고 제가 화장실을 오래 사용하면서 눈치 보일 때가 있거든요. 저는 화장실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그것도 마음껏 쓸 수 있는 게 좀 좋아요.

 

Q. 이사를 앞두고 걱정되는 게 있나요?

월세도 있긴 해서 경제적인 것과 그리고 범죄의 위험성.

저는 요즘에 길만 가면 무서워요. 요즘에 하도 흉흉한 사건을 많이 봐서.  그런 것도 걱정이 되고.

 제가 밤늦게 다니는 일이 많은데 이사 갈 동네에 술집도 너무 많고 그렇거든요. 그리고 제 주변에 자취하는 언니들 이야기 들어보면 너무 무서운 이야기들이 많아요. 모르는 남자가 쫓아오는 경우가 제 주변에 두 명이나 있었어요. 그런 얘기 들으면 남 일 같지 않겠어요. 맞아요. 그래서 요즘에 호신용품 추천을 되게 많이 받고 있어요. 호신용 벨이나 그런 것들. 위험하다고 느끼는 게 자립관과 이사할 집이 다른가요? 다른 것 같아요. 우선 집에 룸메이트가 있고, 저희 자립관은 밤마다 귀가 연락을 해야 해요. 그래서 연락이 안 오면 저한테 전화를 하거나 실종 신고를 할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그것도 다른 것 같아요. 


걱정되는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기대가 더 많은 것 같이 느껴져요.  그런 것 같아요.  근데 여기까지 오는 과정이 너무너무 힘들었어요. 

그 과정 얘기를 좀 해도 될까요?  사실 지금 이렇게 행복한 이유가 그 과정에서 너무 불행했거든요. 그래서 지금 너무 행복해요. 왜냐하면 그때는... 이제 (자립관에서) 나가야 해요. 그래서 처음에 고시원 생각했잖아요. 근데 암만 봐도 고시원은 정말 드라마<타인은 지옥이다>처럼 내가 거기서 뭐 칼빵 맞아도 사람들 모를 것 같고... 하여튼 그랬어요. 

그러다 매입임대 신청이 운 좋게 기간이 되 가지고 신청을 하는데, 제가 그때는 수급자가 아니니까 합격을 하려면 부모님 수급자 자격으로 신청을 해야 했어요. 그러려면 또 부모님의 장애인증 그런 증명서랑 그다음에 기초생활 수급자 뭐 그런 것도 필요했어요. 근데 그런 거를 온라인으로 발급해서 보내기가 안 되는 거예요, 저 혼자서는. 그래서 제가 동사무소에 갔는데 저희 엄마, 아빠의 증명서를 떼려 한다, 그러니까 엄마의 주민등록증이 필요하대요. 근데 저는 서울에 있는데 어떡하지? 이랬는데 당장 내일이 서류 마감 날인 거예요. (엄마한테) 연락을 했어요.

진짜 오랜만에 출소한 이후로 처음 연락한 거거든요. (저한테) 엄청 뭐라 했어요. 누가요? 엄마 아빠 둘 다. 통화는 안 했는데, 누가 봐도 아빠의 문자 말투였어요. 통화는 무서워서 안 했고 누가 봐도 아빠 말투로 진짜 옛날 한 10년 전이랑 똑같이 저한테 이야기를 하신 거예요. 말하는 내용도 똑같고 그때 엄청 무기력했거든요. 나, 이거 하려면 또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하네. 망했다... 어떡하지... 했는데 결국 설득을 해서 보내주셨어요. 딱 서류 마감 날에. 저한테 우편으로 보내줘야 했어요. 근데 그것도 하루가 걸려요. 그래서 저는 원래 학교에 가야 했었는데 서류 마감일이 딱 당일이어서 학교에 못 가고 제출을 하고 갔거든요. 그러면서 그냥 너무 많이 힘들었어요, 그 과정이.

 

문자는 어떤 내용이었어요?  어떤 내용이었냐면 그냥 비난을 했는데... “네가 우리 가정에 무슨 불화를 일으킨 줄 아냐” 그냥 그런 식의 비난이 있었어요. “너는 우리 가족을 파탄시켜놓고 너 혼자 잘 살겠다고 지금 이걸 보내주라는 거냐” 이러면서. 상처받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그냥 할 말만 했죠. 그냥 할 말만 했어요. 그랬더니 보내주더라고요. 근데 사실 겉으로는 센 척하면서 문자 했는데 진짜 엄청 울었어요. 문자 받고 하루 종일... 


Q. 아버지는 언제 나오셨어요?

작년 -월이요.  날짜를 알고 있었어요?  날짜까지는 몰랐어요. 저희 아빠가 저랑 살 때부터 자주 가는 인터넷 카페가 있었어요. 제가 그 카페에 같이 살 때부터 가입이 돼 있어요, 그래서 제가 작년 가을부터 아빠가 나올 걸 아니까 그 카페에 좀 주기적으로 들어가서 아빠의 닉네임을 쳤었어요. 어느 순간에 딱 올라왔더라고요. 거기가 일용직 구하는 카페거든요. 아빠가 글을 올린 거예요. 자기 뭐 일감 찾는다고. 그래서 이거 나왔네! 나왔다! 나왔구나 싶었어요. 꾸준히 글이 올라오더라고요.

저는 사실 그즈음이 아빠가 나오는 게 좀 무서웠어요. 작년 말에서 올해 초 그런 마음이 있었고... 사실 그때는 마음이 좀 다양했어요. 무서운 것도 있었는데 한편으로는 좀 내가 너무 이기적으로 살았나? 내가 너무... 바보같은 생각이지만... 아빠에 대한 마음은 아니었어요. 엄마에 대한 마음이었어요, 이거는. 하담에 있고, 자립관에 있으면서 너무 내 생각만 하고 살았나? 왜냐하면, 저는 엄마랑 정말 진실한 소통도 안 했고 엄마를 막 굳이 찾아가지도 않았고. 가끔 가긴 했지만, 엄마에 대해서 진짜로 생각해 본 적이 없거든요, 한 번도. 그거에 대한 성찰이 좀 들더라고요, 가끔씩. 내가 좀 보살펴야 했었나? 생각이 들고, 갑자기 좀 그들에 대한 불쌍한 마음, 그들의 인생에 대한 불쌍한 마음이 들다가도...

 

왜 불쌍하다고 느꼈어요? 그냥 제가 이렇게 나와서 생활해 보니까 너무 힘든 거예요. 근데 이 사람들은 이렇게 힘든데 어떻게 아파트까지 분양받아서 그렇게 살았지? 그나마 사람다운 집에서 살고, 어떻게 나를 먹이고 그랬던 거지? 지금 와 생각해 보니 그런 생각이 든 거예요.  그리고 좀 무섭기도 했어요. 아빠가 연락하거나 또 내가 이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까 봐, 힘들까 봐. 왜냐하면, 너무 무서운 존재였잖아요, 저한테.

근데 그 카페에 어떤 글이 올라왔어요. (아빠가) 일용직 구한다는 그 댓글에 어떤 사람이 욕을 한 거예요. 아빠 닉네임이 **거든요. “**님 믿지 마세요.” 하면서 아빠가 거짓말한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그거 보고 이 사람 아직도 이렇게 사는구나. 그거 보고 무서운 게 싹 내려오는 거예요. 내가 정말 비겁한 사람을 무서워하고 있었네, 생각이 든 거예요. 그래서 그 이후로는 좀 마음이 괜찮았었어요.

 

저는 그런 마음이 있어요. 제가 만약에 나중에 너무너무 힘들고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내가 아빠한테 연락할까 봐. 왜냐면 아빠가 저한테 그냥 문자로 오거든요. 자기가 힘들면 도와주겠다, 말만 해라. 이런 문자도 왔어요, 며칠 전에. “죽고 싶다. 그래도 산다. 너한테 갚아야 할 게 많으니까.” 이런 식으로 오고.  그게 어떤 식으로 해석이 돼요? 그냥 뭐,,, 만약에 달라고 하면 주긴 주겠죠? 그런데 그런 건 아직도 뭔가 자기 손아귀에 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런 식으로 문자 엄청 보내요.  손아귀에 있다는 건 어떤 뜻일까요?  아직도 저를 좀 그래도 조종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아까 말한 것처럼 뭐라 하거나 욕을 하다가도 갑자기 엄청 다정하게 보내서 “도와줄 수 있다. 힘들 때 연락해라” 그러고 갑자기 “너 이상한 짓 하지 마라. 너 뭐 하고 다니냐” 이걸 계속 반복하거든요. 그러면서 이 사람은 아직도 나를 좀 조종하고 싶나 보다. 내가 이 사람 밖에 있으니까 좀 답답한가 보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저는 지금은 이 사람한테 절대 속하지 말아야지. 혼자 힘으로 살아가야지 하는데, 제가 정말 너무 아무것도 없고 막 이럴 때 내가 이 사람한테 돈을 달라고 할까 봐 좀 그런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돈을 달라고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안 될 것 같아요. 저는 돈을 받는 순간 그 이런 생각이 들면 안 되지만 그 사람한테 좀 잘 보여야 할 것 같아요, 느낌이.

 

주소지는 열람 제한했다고 들었는데, 핸드폰은 차단하고 싶지 않아요? 차단을 생각해봤어요. 근데 차단을 안 하는 이유가 혹시나 지금은 이미 1인 가정이고 개인 수급자가 돼서 다행이지만, 내가 이번 임대주택같이 이런 일이 생길 때 이 사람한테 연락을 해야 하지 않나... 내가 정말 필요할 때 못 받을까 봐.  


여러 마음이 있는 것 같네요. 여전히 무서운 마음도 있나요? 그래도 조금은 있는 것 같아요. 문자를 볼 때도 무서움이 좀 있어요. 왜냐하면, 그 문자 내용들이 제가 옛날에 들었던 말이랑 너무 똑같아서 자꾸 그때로, 다시 어린 나로 돌아가서 이거를 다시 듣는 느낌이에요.

 

Q. 아버지 출소 후 어머니에 대한 마음이 좀 달라졌을까요?

여기서 또 말할 포인트가 있어요. 엄마가 아빠 출소하기 전까지는 이상하게 저랑 은근히 가까웠어요. 엄마가 같이 살 때도 저한테 원래 말 한마디 안 하고, 표현도 안 하고 정말 거의 남이었거든요. 같이 살 때는 안 그랬는데 전화가 오기도 하는 거예요. 근데 내용은 별거 없어서 제가 느끼기에는 엄마가 좀 외롭나? 내가 보고 싶나? 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리고 가끔씩 막 사랑한다고 하기도 하고, 보고 싶다고 하기도 하고, 힘들면 얘기하라고 하면서. 그래도 나한테 조금 그런 마음은 있나 보다 생각을 했는데 아빠가 출소하니까 180도 달라진 거예요.

 

달라진 걸 어떻게 알게 되었어요?  문자도 안 올뿐더러 제가 엄마한테 문자를 했을 때, “너 알아서 해라” 이렇게. 원래 이러지 않았는데 나한테 왜 이러지? 하고 계속 문자를 해보니까, 약간 아빠한테 옛날같이 조종당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엄마는 대체 왜 이렇게 조종을 당하고, 왜 이렇게 아빠를 좋아할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버지 출소 전 어머니가 보여줬던 모습이 어떻게 느껴졌어요? 어... 전 사실 좋았어요. 옛날에 제일 친한 친구가 할아버지랑 진짜 친했거든요. 그래서 같이 노는 중에도 할아버지한테 전화가 하루에 막 세 번씩 와요. 우리 ‘강아지’, 우리 ‘애기’하면서 엄청 챙겨주던 걸 항상 옆에서 바라봤어요. 사실 그때는 부끄러워서 부럽다고 얘기를 못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그게 사실 너무 부러웠거든요. 하루에 세 번씩 저렇게 전화 걸어서 챙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근데 아빠가 출소하기 전까지는 엄마가 저한테 그런 식으로 좀 가끔이라도 해주니까 그게 좀 채워졌던 것 같아요. 저는 좀... 그렇게 보살핌 받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좀 좋았어요.

 

반면 어머니에 대한 책임감은 좀 덜어져서 편해진 면이 있을까요? 근데 이게... 편해진 건 모르겠는데 그냥 지금은 그런 생각이 안 들거든요. 엄마를 좀 내가 책임져야 되나? 이런 생각은 안 드는데... 과연 이게 맞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기는 해요. 나는 엄마가 좋은 것도 아니고 싫은 것도 아닌데 아.. 근데 엄마는 저 사람을 좋아하고 아... 근데 이대로 가만히 당연히 내버려 둘 수밖에 없지. 근데 정말 이렇게 평생? 평생 이렇게? 그냥 그런 의문이 드는 것 같아요. 난 정말 말 한마디 못해보고 엄마한테 뭔가 그런 애정 표현 하나도 못 해보고. 평생 아빠한테 종속당해서 사는 걸 내가 보는 건 맞을까?


Q. 오빠도 가해했던 것 같다고 그랬었어요.

맞아요, 맞아. 그런데 제가 너무 흐린 눈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사실 흐린 눈으로 보는 것 같기도 해요. 이게 진짜 바보 같은 생각이긴 한데, 오빠도 어쩌면 아빠에 의한 피해자라고 보거든요. 오빠든 엄마든 다.

 근데 또 어떻게 보면 제 가해자는 이 셋이 다 되고, 이 셋은 또 어떻게 보면 피해자고. 그런데 엄마는 정말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오빠는 지금 와서는 저를 그래도 이해를 하고 자기의 어떤 그런 과거에 대해서 좀... 그게 옛날에는 얘기한 적이 없었는데 사과를 하기보다는 그냥 장문으로 왔었어요. 아빠가 출소하고 나서 자기의 마음을 저한테 장문으로 보냈을 때가 있었거든요.

 저에 대한 생각, 이 가족에 대한 생각. 그런 게 왔을 때가 있었는데 그때 그런 언급을 좀 했었어요. 저는 어렸을 때 정말 오빠랑 친하게 지냈단 말이에요. 엄청 어렸을 때. 그래서 저는 항상 오빠랑 사이가 이렇게 된 게 후회됐었거든요. 그리고 오빠를 좀 제 편으로 끌어오고 싶었어요. 저는 오빠랑 너무 친했고 좋아했으니까. 근데 그렇게 못 지내서 화가 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했는데 올해 돼서 걔도 저한테 사실 정식으로 사과는 아니지만, 사과 아닌 사과를 하고 이태 동안 뭔가 못했던 가족 이야기를 하니까, 그나마 뭔가 가족이 다시 돌아온 느낌? (웃음) 그런 마음이 있어요. 내가 원래 혼자였다면 그래도 한 명이 더 내 옆에 있는 기분이 들어요, 지금은. 이러면 안 되는 건가요? 그래서 뭔가 복잡해요. 오빠에 대한 거. 근데 지금은 그냥 오빠가 아직도 좀 좋은 것 같아요.

이게 어린 거로 해결이 되는 건 아니지만, 오빠도 정말 정말 어렸다고 생각을 하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같은 가정이니까 완전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감정이잖아요. 어떻게 보면 저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점 때문에 오빠랑 가까이 지내고 싶은 마음이 큰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좋지? 잘 모르겠어요. 아 복잡한 거죠. (웃음)

 

Q. 7년이라는 형량은 어떻게 생각해요?

마음 같아서는 안 나오는 게 제일 저희한테 좋은 영향이 올 거 같거든요. 저도 그렇고 저희 다른 가족들한테도 그렇고, 사회에도 그렇고. 그래서 사실 안 나왔었으면 좋겠어요. 제일 베스트는 안 나오는 거고, 그래도 나와야 한다 하면 한 여든 정도는 있어야 하는 게 제일 속 편할 것 같고. 우리나라 법상 정말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는 그래도 곱하기 2해서 14년 정도는 돼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하죠. 7년은 솔직히 너무 짧아요.

저는 그리고 이 형량이 끝날 줄은 그 당시에는 (몰랐어요). 근데 막상 7년이 지나니까 너무 짧은 거예요. 이게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을 지금 와서 더 하는 것 같아요.

 

출소 전과 후, 심적으로 변화가 있었나요? 저는... 나오기 전이 마음이 더 불편했던 것 같아요. 딱 그 가을쯤에? 그때가 마음이 제일 불편했고. 나오고 나서는 무서운 마음이 있었어요. 근데 그 뒤에 좀 아까 말했던 일들로 그런 마음이 상쇄되긴 했지만, 나오기 전이 제일 무서웠어요.

아, 제가 그런 적이 있었거든요. 제가 하담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00역에서 (수감 되기 전) 아빠를 우연히 만난 적이 있었어요. 그때 너무 놀란 마음에 친구랑 제가 겁나 뛰었거든요. 그때 좀 무서웠어요. 저는 약간 그 생각도 나면서 내가 정말 이 사람을 우연히 만났을 때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하지? 라는 생각을 좀 많이 했던 것 같아요.

 

Q. 어떻게 신고하게 되었어요?

위클래스에서 제가 학교를 한 달 동안 안 나오니까 왜 안 왔냐고 해서 그때 처음으로 다른 사람한테 얘기를 한 거예요, 이 사건에 대해서. 선생님이 그때 이거는 신고를 해야 한다고 해서. 선생님이 신고할 거라고 생각을 못 했던 거죠? 그냥 한 달 동안 학교에 못 온 거에 대해서 설명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 선생님 덕분에 제가 이렇게 하담에 갈 수 있었던 건데 이게 학교에 알려야 되나 봐요. 학부장님이랑 저희 학년의 대표 담당 선생님들이 이걸 다 아시고 계셨고.


그리고 제가 하담에 가면 당분간 학교에 못 가니까 마지막 날에는 심지어 저를 불러서, 남자 선생님들이 3명이 계셨는데 누군지 기억도 나요. 저한테 “그래도 아버지인데 그러는 거 아니야.” 막 이러면서 “아버지가 너 잘되라고 뭐 조금 때리신 거겠지.” 학교 복장 규정이 엄격했는데 제가 좀 벗어난 차림을 했거든요. 그래서 학부장님이 저를 안 좋게 보셨는데 가정에서도 좀 반항을 하는 아이로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그때 정말 어린 나이만 아니었으면, 그때 조금만 용기가 있었으면 뭐라고 했을 텐데... 그때는 너무 주눅 들고, 정신도 없었고... 그래서 그냥 그 말을 꿋꿋이 들어가면서 있었던 기억이 있어요. 아직도 억울해요. 그거에 대해서.

 

신고 이후 어땠어요? 분리될 것을 생각 못 했을 것 같은데. 맞아요, 생각 못 했어요. 너무 급작스럽고, 당황스러웠어요. 하지만 분리된 이후 지속한 상담으로 깨달았어요. 내가 분리되길 잘했다. 신고를 후회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오히려 더 일찍 할걸...  그 전에 신고할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나요? 저는 신고감이 될 거라고 생각을 못 했어요. 아, 얼핏 알았어요. 얼핏, 이거 좀 문제가 있나? 사랑과 전쟁 뭐 인간극장 같은 거 보면 나오니까... 얼핏 알았는데 또 얼핏 내 힘으론 부족하지 이런 느낌이 들었어요.

2편에서 계속 

 

<사진> 영화 스텝 겸 단역으로 출연 중인 달팽이님 


[하담플러스]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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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 후기: 퇴소인 모임, 연대의 시작이 되길 바래

인터뷰: 독립을 위해 돈을 모으고, 내년에는 대학에 갈 거예요! (베라)

인터뷰: 아이와 함께 하담에 놀러 가고 싶죠 (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