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겨울에서 봄까지, 윤석열 퇴진광장에 민우회가 있었다

사무국
2025-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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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의 계엄령 발표부터 2025년 4월 4일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파면 선고까지, 123일간 고양여성민우회가 참여한 광장의 기억 일부를 소개합니다.


1. 2024년 12월 3일 - 계엄령 발표 당일


2024년 12월 3일, 고양여성민우회는 정기총회를 준비하는 총준위(총회준비위원회의)를 열었습니다. 종일 치열한 회의 끝에 너덜너덜해져서 귀가해 저녁을 먹을 때까진 평소와 다름없는 화요일 밤이었습니다. 잘 준비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열었다가 알게 된 충격적인 소식. 

당황스러움, 비현실적임, 혼란스러운 감각 등을 느끼며 뉴스 속보들을 닥치는대로 살펴보다가 계엄사령부 포고령 전문 기사를 클릭했습니다.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거나, 전복을 기도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하고", "반국가세력 등 체제전복세력을 제외한 선량한 일반 국민"


계엄 포고령 첫 문장을 읽자마자 머리에 찬물을 끼얹은듯 현실감각이 돌아왔습니다. 


'오늘 총준위를 하고 왔는데, 우리 총회 열 수 있는 건가? 우리의 활동이 정치활동인데? 선량한 일반 국민과 체제전복세력을 누가, 어떻게 나눌건데? 당장 내일 출근은 어떡하지? 국회로 출근해야 하나 사무실로 출근해야 하나? 내일이 아니라 지금 당장 국회로 가야 하나?'


이런 고민을 하던 사이에 오전 1시 2분, 국회에서 재석 190명 전원 찬성으로 계엄 해제 결의안이 통과되었다는 속보가 떴습니다. 계엄 해제 결의안이 신속히 통과될 수 있었던 것이 이날 국회 앞에 모인 많은 시민들 덕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된 것은 나중의 일이었습니다.


(사진설명) 고양여성민우회 회원 카톡방에서도 12.3 계엄 당일 국회 앞에 갔었던 회원 쟁기님께서 소식을 올려주었다.


2. 2024년 12월 4일 - '내란죄 윤석열 퇴진! 국민주권 실현! 사회대개혁! 퇴진광장을 열자! 시민촛불'

모닝콜 알람이 울리기도 전 새벽에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눈을 뜨자마자 핸드폰을 켜 간밤에 뜬 뉴스 속보들을 확인했습니다. 새벽 4시 26분, 윤석열이 비상계엄 해제를 선언했다는 소식을 보고 '일단 사무실로 출근하면 되겠군' 싶었습니다. 하루만에 계엄이 해제되었지만 이후로도 한동안은 자다가도 새벽에 '혹시?', '설마!' 하는 마음에 벌떡 일어나 뉴스 속보를 확인하고 다시 잠드는 날들이 반복되었습니다.


(사진설명) 2024년 12월 4일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시민촛불 집회에 참석한 민우회 회원들과 활동가들


3. 2024년 12월 7일 - 내란죄 윤석열 퇴진 국민주권 실현 사회대개혁 범국민촛불대행진


국회에서 김건희 특검법과 윤석열의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이 예정된 날, 전철이 국회의사당역 무정차 운행을 할 정도로 수많은 시민들이 국회 앞에 모였습니다. 당연히 통과될 줄 알았던 탄핵소추안 표결에 국민의힘 의원이 단체로 참여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충격과 분노를 느낀 날, 국민의힘 의원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르다가 김상욱 의원이 들어와 표결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고 울컥했던 날입니다.

(사진설명) 2024년 12월 7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부결 이후에도 헛헛함에 한참을 국회 앞을 서성이던 많은 시민들이 있었다.


4. 2024년 12월 14일 - 내란수괴 윤석열 즉각탄핵 범국민촛불 대행진


200만 명이 국회 앞에 모인 날.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효 8표로 마침내 가결되었습니다. 속시원한 감정과 동시에 탄핵소추안 가결이 이렇게 힘들 일인가 싶었던 날입니다.

(사진설명) 2024년 12월 14일, 국회 앞 범국민촛불 대행진에 참여하기 위해 당산역에서부터 줄을 서서 걸어가고 있는 시민들(왼쪽),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기념사진을 촬영 중인 고양여성민우회 활동가들과 회원들.


5. 2024년 12월 22일 - 남태령 집회

12월 21일 토요일, 전국 각지에서 서울로 향하던 전농(전국농민회총연맹) 전봉준 투쟁단 트랙터들이 남태령 고개 앞에서 경찰에 막혔습니다. 경찰과의 대치는 22일 다음날 아침까지도 계속됐습니다. 밤새 전농과 함께 남태령을 지킨 것은 이번에도 시민들이었습니다. 현장에 핫팩과 응원봉에 들어갈 건전지가 부족하다는 소식을 듣고 여러 물품을 사서 남태령으로 향했습니다. 남태령역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길에 밤을 새고 내려오는 시민들의 화이팅 인사를 들으며 울컥했습니다. 

이미 한가득 쌓여있는데 점점 늘어나는 각종 상비약, 간식, 핫팩, 생리대 등 시민들의 나눔물품을 보며 또 울컥했습니다. 뒤를 돌아볼 때마다 시민들의 행렬이 점점 늘어났고, 경찰들도 마침내 길을 열었습니다. 늘 행진하던 광화문 일대가 아닌 강남 일대에서 사당역을 향해 행진하는 발걸음은 낯설면서도 함께여서 좋았습니다.

(사진설명) 2024년 12월 22일. 남태령 고개 앞에서 경찰차벽에 막힌 전농 전봉준투쟁단 트랙터 행렬. 경찰이 띄운 전광판에 불법집회 중이라는 경고문이 떠있다.

(사진설명) 2024년 12월 22일. 남태령 고개 앞에 모인 시민들(오른쪽), 후원물품을 나눠주는 자원활동가들.

(사진설명) 2024년 12월 22일. 남태령역에서 사당역 방면으로 행진하는 시민들.


6. 2025년 1월 4일 - 윤석열퇴진 사회대개혁 비상행동 내란수괴 윤석열 체포구속 긴급행동집회

제주항공 참사 이후 참여한 비상행동 집회에서 제주항공 참사 추모의 메시지를 남기고, 세월호 유가족분들이 나눠주시는 주먹밥을 먹으며 연대의 회복력을 느꼈습니다.

(사진설명) 2025년 1월 4일. 경복궁 동십자각에서 열린 비상행동 집회에 마련된 제주항공 참사 추모의 벽(왼쪽), 4.16 유가족들이 나눠주신 주먹밥.


7. 2025년 1월 5일 - 윤석열퇴진 사회대개혁 비상행동 내란수괴 윤석열 체포구속 긴급행동집회

윤석열 체포영장이 발부되었지만 대통령 경호처의 방해로 윤석열 체포에 번번이 실패하던 시기였습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열린 윤석열 체포를 촉구하는 집회가 2박 3일로 열린 이유입니다. 비까지 내려서 너무 추운 날씨였습니다. 집회 중간중간 자리에서 일어나 구호에 맞춰 에스파의 위플래시를 따라 외쳤습니다. 누군가는 심각한 탄핵집회에서 왜 케이팝을 트느냐고 비판합니다. 너무 추워서 살려고 그랬습니다. 프란치스코 꼰벤뚜알 수도회 덕분에 화장실도 쓰고, 비에 젖은 양말을 새 양말로 갈아신을 수도 있었습니다. 이것이 종교의 힘, 종교의 순기능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진설명) 2025년 1월 5일. 한남동 집회에서 '키세스단'이 된 시민들의 모습.

(사진설명) 2025년 1월 5일. 한남동 집회 참여 시민들에게 장소를 제공해준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8. 2025년 4월 4일 -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파면 선고 안국역 앞 집회

탄핵소추안 표결부터 체포, 구속까지 뭐 하나 쉬운 일이 없었던 윤석열 파면의 길.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파면 선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8 대 0 만장일치로 인용 선고되었지만 여전히 물음표가 남습니다. 왜 이렇게 선고가 늦어졌는지, 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끝끝내 마은혁 헌법재판관을 임명하지 않았는지, 왜 윤석열 파면 선고가 당연하고 상식적인 일이 아니라 이토록 전전긍긍해하며 기뻐해야 할 소식이 된 것인지 의문입니다. 윤석열 대통령 파면 선고는 내란 종식의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사진설명) 2025년 4월 4일. 윤석열 파면 선고 이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고양여성민우회 활동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