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과 나눔 219호] 소모임활동 - 풋살하던 어느 날의 이야기(FC고공행진)

사무국
2023-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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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초 룰 적용 부분에서 킥인으로 슈팅할 때는 우리팀 선수나 상대팀 선수나 공이 몸에 터치 1번하고 골 들어가야 득점이 인정되는 겁니다.”

“그러면 선생님, 그냥 차면 안되는 건가요?”

“선생님, 골키퍼는 상대편 공만 잡을 수 있나요?”

선생님, 선생님...


11월 열리는 전국여성민우회 풋살대회를 앞두고 규정 설명을 하는 시간. 킥인, 골 클리어런스, 코너킥, 간접 프리킥, 직접프리킥. 어려운 용어를 설명하는 선생님에게 우리들의 질문이 이어진다.

추석을 한주 앞둔 21일 목요일 오후 8시 백석풋살장. 어스름 어둠 너머로 아파트의 실루엣이 멋지다. 지난주까지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후두둑 떨어졌는데 이젠 바람이 제법 차다. 무엇이든 잘하는 이유는 모두 비슷하지만, 못하고 버벅거리는 사람들은 다 저마다의 핑계가 많은 법.


“추우니까 또 몸이 굳어서 안 움직여.” “그러니까 더울 때는 덥다고 난리였는데 추우니 기운이 또 안나네.”

 

오늘은 이모를 따라온 초등학교 3학년 ‘천사’가 끝까지 지치지 않고 엄마들을 이끌었다. 엄마인 ‘나썬’을 따라왔다가 멤버가 된 ‘한서’는 이제 팀의 어엿한 에이스 선수. 고작 5분씩 전후반을 뛰면서도 “선생님 아직도 5분 안됐어요”를 외치는 엄마 선수들과 달리 한서는 끝까지 기운이 펄펄. 천사도 발과 공이 같이 하늘을 난다.

‘우리도 풋살팀 한번 만들어 볼까요’제안에 정말 한번 해보았다가 어느덧 대회를 준비하게 된 ‘FC고공행진’. 축구, 풋살은 왜 여성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체육시간, 남학생은 축구, 여학생은 피구가 정해져 있었다. 운동장 한가운데는 남학생과 선생님들의 축구장으로, 가장자리는 여학생들의 피구시합, 고무줄놀이를 하는 곳으로. 그냥 그렇게 법처럼 지켜졌다.

내가 처음 풋살을 한다고 개인 페이스북에 사진과 소식을 올리니 댓글은 대부분 걱정과 놀림이었다.


“먼일인가, 뛰는 게 상상이 안 감.”“풋살을? 그 힘든 풋살을 하신다고라?” “운동하는 여자가 특히 더 멋지던데 샘이군요.”

 

사실 우리들이야말로 언제 이런 상상을 해봤을까. ‘펄펄 날던 시절’에는 남자들 틈바구니에서 부대끼며 일하느라, 일이 손에 잡힐 무렵에는 아이 키우고, 말만 멋진 ‘워킹맘’, ‘슈퍼맘’하느라 그렇게 시간이 갔다. 이제 좀 여유가 생겨 취미생활, 운동도 해보려고 하는데 이런. 맥주 한잔에 흐느적거리고, 한끼만 굶어도 허기로 짜증이 올라온다. 손목이 시큰거리더니 팔다리, 허리에서 삐그덕 소리가 난다. 슬프지도 않은데 눈물이 나고, 핸드폰을 찡그리고 보는 내가 슬프다.

그런 우리들이 시작했다. 풋살을. 첫 시간 헛발질에 혼자 괜히 자빠지기. 자살골에 발대신 손으로 공차기. 어이없는 실수 연발에도 선생님은 “괜찮다, 잘했다, 다 그런다”며 토닥토닥. 헉헉거리며 두시간이 지나면 다들 산악훈련이라도 하고 온 듯 머리카락은 미역처럼 휘날리고, 얼굴은 벌겋다.

다들 그랬을테지. 풋살을 하고 난 다음 날은 팔다리가 아파서 끙끙 소리가 절로 나왔다. 신기한 건 그렇게 한주한주 지나다보니 어느덧 달라지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됐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겉돌던 공이 발에 조금 가까워졌다. 시합시간 3분도 길다며 선생님께 ‘땡깡’을 부렸는데 어느 순간 5분을 뛰고도 드러눕지 않게 됐다.

몸을 쓰고, 서로의 역할을 나누고. 잘 뛰는 사람은 앞에 서고, 못하는 이는 골대를 어정거리면 된다. 연속 골을 넣어도 칭찬받고, 어쩌다 헛발질에 골이 들어가면 환호를 해준다. 아, 이런 맛에 운동, 축구를 그렇게들 하는 거였구나. 남자들이 거짓말해가며 조기축구, 주말 스포츠를 하러 나갈 때면 ‘술먹으러 가는거지’라고만 했었는데 말이다.

11월에 우리는 과연 대회에 나갈 수 있을까. 6명 한팀이라는데. 규칙이나 제대로 지킬까. 걱정과 염려가 더 크지만. 아무려면 어떠나. 결론을 잘 모를 때가 많고, 알아도 별 소용이 없다. 고공행진에 참여하며 새롭게 고양여성민우회 회원이 여러명 가입했다. 풋살 동아리 한다고 회원가입까지?


“사람들이 너무 좋아서, 민우회까지 좋아졌다”고 한다. 초등학교 3학년 천사. 5학년 한서부터 환갑이 눈앞에 온 회원들까지 한팀이 된 것도 참 좋다. 서로 존대하며, 격려하며.

 

고양여성민우회 FC고공행진 회원이 되어 풋살을 하던 어느날의 기록이다. 고공행진 파이팅, 고양여성민우회 고맙습니다.

 

김진이(로켓단/고양여성민우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