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과 나눔 218호] 젠더이슈 - 디지털성폭력, 그 가혹한 굴레

사무국
2023-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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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성폭력, 그 가혹한 굴레

고양성폭력상담소에서 근무한지 일 년 차 갓 넘은 새내기, 상담이란 것이 연차가 많든 적든 쉽지 않은 영역인지라 새내기로서 더욱 매일이 태산같이 느껴지지만 개인적으로 상담하기에 가장 어려운 성폭력 피해유형을 꼽으라면 디지털성폭력피해가 아닐까 싶다. 특히 디지털 성범죄가 가지는 특성들은 다른 성폭력 피해에 비해 피해자의 회복과 지원에 한계를 긋는다.

디지털성폭력은 강간, 강제추행, 교제폭력, 스토킹 등 대부분의 성폭력 피해유형에 수반되어 중복으로 발생한다. 이는 디지털성범죄의 범행 도구 중 89,5%가 휴대폰이라는 사실과 연결된다. 과거 디지털성범죄가 설치형 카메라에 의한 피해가 주였다면 지금은 개인폰을 통한 범죄가 주를 이룬다. 치밀한 계획 없이도 누구나 가해자와 피해자가 될 수 있으며 화장실과 숙박시설의 구멍에 대한 불안이 누구든 어디든 그 구멍이 될 수 있다는 일상의 불안으로 확대된 것이다.

두 번째 특징은 자신의 피해를 본인이 인지하기보다 대부분 타인을 통해 인지한다는 것이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서 발행한 ‘2020년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지원 보고서’에 따르면 피해자가 직접 인지한 26.4%에 비해 타인을 통한 인지율이 45,2%로 1.8배가량 높다. 피해 당사자는 피해영상이 온라인이라는 바다에서 몇 년을 떠돌아다녀도 모르다가 피해가 일파만파 커진 이후에야 지인으로부터 “이거 아무래도 너인 것 같아”라는 말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이다. 이는 영상삭제와 같은 초기대응 권리 박탈과 함께 첫 인지부터 제3자(불특정 다수 포함)에게 본인의 피해를 고스란히 강제 노출시켜버리는 정신적 타격을 함께 맞닥뜨린다.

한 사건에 다수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존재한다는 것 또한 문제적 특성이다. 현행 법령에 따르면 수사와 재판의 관할은 피의자 혹은 피고인의 주소지를 기준으로 한다. 범죄 발생지를 관할로 하는 경우도 있지만 디지털성범죄는 범죄 발생지가 디지털 상에 있기 때문에 피해자가 자신의 주거지에 신고해도 반드시 피고인의 주소지로 관할이 넘어간다. 문제는 동일한 피해영상을 유포한 가해자가 다수일 경우 관할은 전국으로 흩어지고 피해자는 흩어진 관할마다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해자가 한 명이라 해도 피해자가 다수일 경우 수사관이 피해자에게 일일이 상황을 알리지도 않고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가 고발돼 진행되는지 조차 모르며 알게 된다 해도 다수 피해자 중 한 명일뿐이기에 수사기관과의 소통도 쉽지 않다. 모 변호사가 맡은 사건의 경우 가해자 10명에 피해자만 100명이었으니 전국으로 흩어진 수사기관의 조사와 재판을 팔로잉 한다는 것은 무한도전에 가까운 일이다.

디지털성폭력이 갖는 가장 큰 특징은 유포 피해의 확인이 어렵고 유포 가능성이 항시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성폭력 피해자가 가장 원하는 것은 피해 자료의 영구삭제이다. 피해영상에 관한 모니터링과 삭제 지원을 하려면 유포 정황을 확인하기 위한 영상물 원본이나 사본이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상담을 의뢰하는 피해자 다수는 자신의 폰에 피해에 관한 영상과 앱이 있다는 것이 끔찍해서 피해 당시 바로 삭제해버리는 경우가 많고 사본조차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피해자에게 증거물이 없는 경우 다음으로 기대할 수 있는 방법은 고소를 통한 수사기관의 포렌식인데 가해자의 신원 확보와 압수수색 등의 난관을 운 좋게 거친다 해도 포렌식이나 압수절차를 통해 확인된 관련 자료는 피해자에게 교부해주지 않기 때문에 재유포 피해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는 기존영상인지 새로운 영상인지(단 한 번의 피해로도 짧은 시간에 수백수천의 피해 사진이 만들어진다)조차 확인하기 어렵고 기억조차 떠올리기 어려워한다. 한 개의 영상이 유포되고 그 사건을 꾸역꾸역 잊어갈 때쯤 또다시 영상이 유포되며 기본적인 복구조차 할 틈도 없이 그렇게 피해자에게 연속해서 쓰나미가 몰아 덮친다. 거기에 더해 여가부의 피해자 무료법률 연속지원은 3회만 가능하기 때문에 제4, 제5 아니 그 이후의 연속적 쓰나미에 대비해야 할 자원의 부재는 재유포의 공포를 안고 살아가는 피해자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한다.

 

한 피해자의 전화를 받았다. 사건은 유죄로 마무리되었고 영상은 모두 삭제되었다 생각했는데 최근에 다른 사이트를 통해 자신의 영상이 또 올라왔다는 것이다. 아~ *시지프스의 형벌인가. ‘이것만 삭제되면 다 끝나는 거지? 제발, 제발 그렇다고 해줘!’ 그 간절함에 대고 영구삭제는 신화라는 현실적 말을 내뱉어야 하는 그 상황이, 서로를 살리기 위해 만난 우리가 서로에게 공포를 안겨야만 하는 이 상황이...

개인적으로 종교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디지털성폭력 피해자의 호소를 들을 때면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어진다. 어찌 인간에게 이토록 끝없는 고통을 내린 것인지. 시지프스처럼 신을 속인 것도 아닌데 아니 속였다 해도 이는 인간이 짊어지기에 너무도 가혹한 굴레가 아닌가. 그럼에도 나는 살아가는 피해자에게 사실에 입각한 예상 시나리오를 미리 알려 추후 피해자가 겪을 수 있는 정신적 충격을 조금이라도 경감해 줄 수 있는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참석한 워크숍에서 만난 디지털성폭력을 주로 진행한다는 변호사의 말이 떠오른다. “사실 뚜렷한 해결책도 모르겠고 지원자로 무기력을 느끼지만 현실을 정확히 알려드리고 유포 피해를 제대로 대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사실을 외면하지 않고 제대로 보려 할 때 거기서 진실한 풀이의 시작점이 되니까요.” 이 굴레를 하루빨리 끊어내기 위해서라도 무엇보다 이 고통을 기꺼이 나누어 짊어질 그녀들이 곳곳에 있음을 믿기에 두렵지만 피해자를 만나고 젠더를 성 상품화하는 사회 저변의 인식을 바꾸어나가는 것에 오늘도 작은 힘을 보태어본다.

*시지프스: 신을 속여, 산꼭대기 바위를 계속 굴려 올리는 형벌을 받은 그리스신화 속 인물.

*참고자료: 한국성폭력위기센터 ‘2023, 무료법룰지원사업을 통해 바라본 반성폭력 운동의 성과와 과제’

도마, 고양여성민우회 부설 ‘고양성폭력상담소’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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