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발목잡고, 잡히며 재미나게 살아봅시다
되돌아보는 고양여성민우회의 역사
러브호텔 반대싸움‧여성 정치까지

러브호텔 반대싸움. 2000년도였다. 아직 이런저런 시설도 갖춰지지 않고 입주가 진행중인 새도시 일산. 이삿짐 차들이 매일 아파트 단지로 들어오고, 새 이웃은 낯설기만 하던 그때. 고양시로는 소위 원주민들과 새로 이사온 이들이 서먹하던 시절. 일산이 전국 뉴스에 화끈하게 등장했다. 선정적인 주제에 반색하며 언론은 쏟아지는 기사로 화답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정말 주목해야했던 것은 이슈를 만들고, 운동을 이끌어간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바로 새로 이사온 ‘신참’ 주민, 대부분은 여성들이었다.
새로 전학간 학교에 아이들을 데려다주며 보게 된 호화로운 숙박시설과 현수막. ‘대실 3시간’이 뭐냐는 아이들의 질문에 엄마들은 심상치않은 상황을 알게 됐고, 그렇게 여성들의 목소리를 중심으로 운동이 시작됐다. 고양시의 여러 시민단체들이 함께 하고, 지역의원, 전문가들이 머리를 모아 법적, 행정적 문제를 지적하게 되었다. 시청, 교육청, 거리로 나서고, 국회도 찾아갔다.
결국 2000년 11월 15일 '숙박 및 유흥업소 난립 저지를 위한 관련법 개정안'이 확정됐고 2001년 6월부터 경기도내 주택가 인근 상업지역이 '특정용도 제한지구'로 지정되어, 러브호텔로 일컬어지는 일반 숙박시설과 위락시설의 건축이 금지됐다. 더이상 마구잡이 숙박시설 허가를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 운동의 중심에 당시 고양파주여성민우회가 있었음에 이견은 없을 것이다.
아이들만 싸우면서 크는 것이 아니다. 러브호텔 반대 운동을 하면서 어른들은 본인들이 이사온 도시, 지역을 알게 됐다. 문제가 생기면 불평만 하지 말고 제기하고, 머리를 맞대고, 싸우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쓰레기 분리배출부터 수박껍질을 말리다가 안전한 소각장 운영 문제까지 고민하게 되었다. 그렇게 여성들이, 민우회가 성장하였다.
‘여성의 정치 세력화’를 위한 토론회, 여성학교, ‘여성의 눈으로 바라본 지역 여성정책과 예산’ 토론회, 여성기초의원후보자와 함께 하는 정책토론회. 당시만 해도 ‘신선’하고도 낯설었던 이런 움직임들은 시의회에 여성 후보를 진출시키고, 여성, 시민들의 권리의식을 높이는데 직접적으로 기여했다.
“배는 나오지 않았는가. 엉덩이 선 모양이 처지지 않았는가. 다리의 선이 곧아야 하며 탄력성이 있어야 한다.”
2000년대 고양시가 주최했던 꽃아가씨 선발대회 기준 중 하나였다. 몸을 상‧하체, 목, 가슴 등으로 나누어 기준에 따라 점수를 매겨 ‘꽃아가씨’를 선발했다. 당시는 전국적으로 지역 특화 행사와 무슨무슨 아가씨 선발대회가 유행일 때였다. 고추, 사과, 마늘 등등 다 아가씨를 뽑았다. 그렇게 뽑인 ‘아가씨’는 꽃박람회와 화훼산업 홍보대사로 활동하도록 하여 지역 발전에 기여한다는 취지였다. 당연히 세금으로 운영했고, 선발위원들은 공무원, 시의원, 관련 단체 사람들이었다. 고양여성민우회는 관련하여 토론회를 개최하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최악의 뉴스’로 선정하기도 했다. 결국 고양꽃아가씨 행사는 폐지됐다.
생활, 경제, 사회, 정치 여러 분야에서 민우회와 시민단체들의 활약이 이어졌고, 고양시의 시민의식, 시민운동은 전국적으로도 꽤 유명해졌다. 지금의 고양시, 지역의 역사는 이러한 시민운동, 사람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 시작과 과정은 물론 경험있는 활동가, 지역시민단체, 전문가들이 함께 했다. 그러나 운동을 이어가며 끝을 볼 수 있었던 것은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 우리 가족의 새 터전을 둘러보는 일부터 시작했던 여성 한명한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6월부터 고양여성민우회 풋살모임이 야심차게 시작했다. 풋살이 궁금해서, 한번 가보기나 하려고 참석했던 이들이 2시간 공을 차고 나면 눈빛이 바뀐다. 격주로 모이기로 했던 것도 매주 모이자고 한다. 안그러면 운동이 되겠냐고.
역사는 돌고돈다고 한다. 고양에서 25년 넘는 역사를 가진 민우회는 그동안 끊임없이 성장하고, 지역과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앞으로의 여정은 또다른 한명한명이 만들어갈 것으로 기대된다. 현수막 문구에 혹하거나, 풋살 한번 해보겠다고 왔다가 발목이 잡혔다면. 잘 된 일이다. 그렇게 발목을 잡힌 이들이 새로운 역사, 여성민우회, 고양시를 만들어가야 한다. 서로 발목잡고, 잡히며 그렇게 흥겨운 고양여성민우회의 미래를 기다려본다.
김진이
고양신문 기자와 데스크로 오~래 일했습니다. 마을공동체, 도시재생, 마을만들기에 재미를 들여 동네에서 뭔가를 만들어보려는 시도를 좀 하다가. 갑자기 서울로 차출되어 7년여를 사라졌다 최근 다시 돌아왔습니다. 마을과 함께 환경 고민도 좀 해볼까 하고 있습니다. 별명은 로켓단. 네 맞습니다. 포켓몬의 악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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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발목잡고, 잡히며 재미나게 살아봅시다
되돌아보는 고양여성민우회의 역사
러브호텔 반대싸움‧여성 정치까지
러브호텔 반대싸움. 2000년도였다. 아직 이런저런 시설도 갖춰지지 않고 입주가 진행중인 새도시 일산. 이삿짐 차들이 매일 아파트 단지로 들어오고, 새 이웃은 낯설기만 하던 그때. 고양시로는 소위 원주민들과 새로 이사온 이들이 서먹하던 시절. 일산이 전국 뉴스에 화끈하게 등장했다. 선정적인 주제에 반색하며 언론은 쏟아지는 기사로 화답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정말 주목해야했던 것은 이슈를 만들고, 운동을 이끌어간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바로 새로 이사온 ‘신참’ 주민, 대부분은 여성들이었다.
새로 전학간 학교에 아이들을 데려다주며 보게 된 호화로운 숙박시설과 현수막. ‘대실 3시간’이 뭐냐는 아이들의 질문에 엄마들은 심상치않은 상황을 알게 됐고, 그렇게 여성들의 목소리를 중심으로 운동이 시작됐다. 고양시의 여러 시민단체들이 함께 하고, 지역의원, 전문가들이 머리를 모아 법적, 행정적 문제를 지적하게 되었다. 시청, 교육청, 거리로 나서고, 국회도 찾아갔다.
결국 2000년 11월 15일 '숙박 및 유흥업소 난립 저지를 위한 관련법 개정안'이 확정됐고 2001년 6월부터 경기도내 주택가 인근 상업지역이 '특정용도 제한지구'로 지정되어, 러브호텔로 일컬어지는 일반 숙박시설과 위락시설의 건축이 금지됐다. 더이상 마구잡이 숙박시설 허가를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 운동의 중심에 당시 고양파주여성민우회가 있었음에 이견은 없을 것이다.
아이들만 싸우면서 크는 것이 아니다. 러브호텔 반대 운동을 하면서 어른들은 본인들이 이사온 도시, 지역을 알게 됐다. 문제가 생기면 불평만 하지 말고 제기하고, 머리를 맞대고, 싸우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쓰레기 분리배출부터 수박껍질을 말리다가 안전한 소각장 운영 문제까지 고민하게 되었다. 그렇게 여성들이, 민우회가 성장하였다.
‘여성의 정치 세력화’를 위한 토론회, 여성학교, ‘여성의 눈으로 바라본 지역 여성정책과 예산’ 토론회, 여성기초의원후보자와 함께 하는 정책토론회. 당시만 해도 ‘신선’하고도 낯설었던 이런 움직임들은 시의회에 여성 후보를 진출시키고, 여성, 시민들의 권리의식을 높이는데 직접적으로 기여했다.
“배는 나오지 않았는가. 엉덩이 선 모양이 처지지 않았는가. 다리의 선이 곧아야 하며 탄력성이 있어야 한다.”
2000년대 고양시가 주최했던 꽃아가씨 선발대회 기준 중 하나였다. 몸을 상‧하체, 목, 가슴 등으로 나누어 기준에 따라 점수를 매겨 ‘꽃아가씨’를 선발했다. 당시는 전국적으로 지역 특화 행사와 무슨무슨 아가씨 선발대회가 유행일 때였다. 고추, 사과, 마늘 등등 다 아가씨를 뽑았다. 그렇게 뽑인 ‘아가씨’는 꽃박람회와 화훼산업 홍보대사로 활동하도록 하여 지역 발전에 기여한다는 취지였다. 당연히 세금으로 운영했고, 선발위원들은 공무원, 시의원, 관련 단체 사람들이었다. 고양여성민우회는 관련하여 토론회를 개최하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최악의 뉴스’로 선정하기도 했다. 결국 고양꽃아가씨 행사는 폐지됐다.
생활, 경제, 사회, 정치 여러 분야에서 민우회와 시민단체들의 활약이 이어졌고, 고양시의 시민의식, 시민운동은 전국적으로도 꽤 유명해졌다. 지금의 고양시, 지역의 역사는 이러한 시민운동, 사람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 시작과 과정은 물론 경험있는 활동가, 지역시민단체, 전문가들이 함께 했다. 그러나 운동을 이어가며 끝을 볼 수 있었던 것은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 우리 가족의 새 터전을 둘러보는 일부터 시작했던 여성 한명한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6월부터 고양여성민우회 풋살모임이 야심차게 시작했다. 풋살이 궁금해서, 한번 가보기나 하려고 참석했던 이들이 2시간 공을 차고 나면 눈빛이 바뀐다. 격주로 모이기로 했던 것도 매주 모이자고 한다. 안그러면 운동이 되겠냐고.
역사는 돌고돈다고 한다. 고양에서 25년 넘는 역사를 가진 민우회는 그동안 끊임없이 성장하고, 지역과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앞으로의 여정은 또다른 한명한명이 만들어갈 것으로 기대된다. 현수막 문구에 혹하거나, 풋살 한번 해보겠다고 왔다가 발목이 잡혔다면. 잘 된 일이다. 그렇게 발목을 잡힌 이들이 새로운 역사, 여성민우회, 고양시를 만들어가야 한다. 서로 발목잡고, 잡히며 그렇게 흥겨운 고양여성민우회의 미래를 기다려본다.
김진이
고양신문 기자와 데스크로 오~래 일했습니다. 마을공동체, 도시재생, 마을만들기에 재미를 들여 동네에서 뭔가를 만들어보려는 시도를 좀 하다가. 갑자기 서울로 차출되어 7년여를 사라졌다 최근 다시 돌아왔습니다. 마을과 함께 환경 고민도 좀 해볼까 하고 있습니다. 별명은 로켓단. 네 맞습니다. 포켓몬의 악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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