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안녕하세요, 고양여성민우회입니다. 한 회원으로부터 에세이 원고를 받았습니다. 성폭력 피해를 지나온 경험을 담담하게 써내린 글이었습니다. 회원님께 이렇게 귀한 글을 왜 민우회에 보내셨냐고 여쭤보았습니다. 회원님께서 제일 처음 해주신 말씀은 자신의 글이 다른 고양여성민우회 회원들, 더 나아가 다른 여성과 성폭력 피해자, 우울증 환자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는 말이었습니다. 자신이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 글에 등장하는 주변의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해줬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회원님께서 전화로 전해주신 말씀을 인용하며 연재글을 시작합니다. "여러분 주위에 이런 아픔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한 번이라도 찾아봐주고 같이 밥을 먹어주면 그 사람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글이 희망의 증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성폭력 피해와 우울증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적 문제입니다. 자신의 고통을 언어화시키지 못해 괴로워하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그런 분들도 자기 고통을 기꺼이 드러낼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다들 죽지 않고 함께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
1393 그리고 109_자살예방전화와 함께한 1년 7개월
표면상으로는 육아휴직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질병휴직에 가까웠던 2020년 8월부터 2022년 12월의 삶. 저는 죽지 않고 살아남아 다시금 이곳으로 돌아왔습니다. 살고 싶은 욕망보다 죽고 싶은 욕망이 더 컸던 그 시절, 나를 붙잡아 주던 것은 내 두 딸이었습니다. 아, 내가 내 병을 일찍 깨닫고, 치료를 받았더라면, 아니, 차라리, 아이도 낳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았더라면, 부모 형제에게는 미안하지만, 내 남편과 내 자식들보다는 덜 미안하여 쉽게 생을 마감할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왜 책임도 지지 못할 아이들을 낳아 세상을 쉽게 떠나지 못하는가.
며칠째 씻지 못하고,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해, 아이들은 라면 부스러기로 밥을 때우고, 빨래는 쌓여가고, 먼지는 방안 이곳저곳을 나뒹굴며 뭉쳐있고, 분홍빛 물때가 검게 변하여 곰팡이 스는 화장실엔 퀴퀴한 냄새가 나고... 죽음의 그림자가 뒤덮인 집안은 꼭 나 자신을 닮은 듯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G지원 앞 병원에 약 타러 가는 날이면, 병원 창문 너머 건물 사이로 보이는 G지원 건물을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불쾌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였습니다. 나는 복직할 수 있을까? 나는 다시금 일할 능력을 회복할 수 있을까... 내가 저곳에 가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다시는 저곳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는 절망이 나를 다시금 짓누를 때마다, 서둘러 거리를 빠져나왔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망가진 걸까. 도대체 왜? 왜 하필 이 시기에?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앞이 보이지 않고, 막막한데, 책임져야 할 내 아이들. 그리고 내 동반자 남편. 너무 미안해. 이렇게 아파서, 사람 구실 못해서, 엄마 노릇 못 해서, 아내 역할 못 해서. 6개월, 1년 그리고 1년 6개월 점점 길어지는 휴직에 남편은 지쳐가고, 아이들의 얼굴엔 그늘이 깊어져갔습니다.
휴직 초기 남편은 내 손을 붙잡고 매일 산책을 나갔고, 분위기 좋은 커피숍에 매일 데리고 나갔습니다. 시원한 바람 부는 커피숍 차양 아래 향긋한 커피 냄새가 나는 그 분위기에서 “죽여 달라”는 아내의 말을 겉으로는 담담히 듣고 있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참담했을지... 그러다 저 사람만이라도 에너지가 있어야 애들을 돌볼 수 있을 테니, 죽고 싶다는 그 말을, 편하게 하고 싶어 제가 선택한 것은 자살 예방의 전화였습니다. 2023년까지는 1393이었는데, 올해부터는 109로 통합되었다고 합니다. 그런 충동이 들 때마다 전화기를 붙잡고 울었습니다. 그리고 편하게 죽을 수 있는 방법을 문의했습니다. 네이버, 유튜브, CHAT GPT에 자살 방법에 대해 문의하고, 스위스의 디그니티에 가입하는 절차를 알아보기도 했지요.
2018년 2월 G지원 METOO 설문조사
마흔네 살 제 인생의 씨줄과 날줄이 얽히고 얽혀서 이런 상태가 되었기에, 아마, 내 우울증의 원인을 찾고자 한다면 내 부모, 내 조부모까지 탐색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의 우울증 삽화를 발생시킨 트리거를 2018년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 본부 G지부에서 실시한 METOO 설문조사와 그로 인해 발생한 문제들로 보고 있습니다.
처음 서지현 검사의 METOO가 JTBC에서 시작되었을 때만 해도, 앞으로 검찰이건 법원이건, 분위기가 달라질 거라고만 생각했지, G지부에서 이 설문을 시작할 거라는 생각을 못 했습니다. 그러던 중, 노조 간부 중에서 직장동료로부터의 성희롱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계셨고, 우리도 전수조사를 해봐야지 않겠냐고 제안을 하셨습니다. 그때만 해도, 사회적인 공감대가 충분했었고, 우리가 설문조사를 하여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던지, 법원에서도 자정 운동이 벌어지리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였지만, 노조 사무국장이었기에, 이 두 입장을 균형 있게 통합시켜 나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가야 했지만, 2018년 새로 시작한 집행부로서는 좋은 사업 아이템이었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여성을 위한 법원은 없다
설문결과를 가지고 총무과장을 만나서, G지원장과 만나게 해 달라 요구하고, 이 설문 결과를 보듯이 G지원 내에서 이런 성희롱 성추행이 있었음에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책임을 묻기로 했지만, 총무과장은 그럴 수 없다며 면담 자체를 거부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제 사건의 가해자가 G지원장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성희롱성폭력고충위원장은 그 지법이나 지원의 장이 맡게 되어 있었는데, 가해자가 성희롱 고충위원장이니, 그 위원회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었을까요? 지부장과 함께 총무과장과의 면담에서, 내가 겪은 성희롱에 대해 감정을 섞지 않고 덤덤히 이야기했을 때, 총무과장은 비웃었습니다. 어디 그 정도 가지고 성희롱이라고 하냐며. 그 비웃음과 비아냥거림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협상을 결렬되었고, 결국 G지부는 코트넷(대한민국 법원 인트라넷)에 설문 결과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코트넷 내부에서는 서지현 검사가 일으킨 선한 방향으로 여론이 조성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언론은 집중포화를 맞던 검찰을 옹호하기 위해서인지 법원을 목표물로 변경하여 공격해 오기 시작했습니다. 검사뿐만 아니라 판사도 성희롱 가해자가 있다. 누구냐? 이런 마녀사냥식의 보도가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G지부의 설문조사 여론이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기관 측의 2차 가해
G지원 직원들은 언론에서 G지원이 언급되는 것에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고, G지원 총무과장은 지부장에게 전화를 하여 막말을 내뱉었습니다. “너희 새끼들 때문에 G지원의 명예가 실추되었다. XX.” 그 통화는 녹음되었고, 간부들은 그 통화를 같이 들었습니다. 차라리 저는 그 통화를 듣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저는 간부이기도 했지만 피해자이기도 했으니까요. 내가 피해자이고, 내가 고통받았는데, 왜 나에게 화를 내고, 내 탓을 하는 거지? 피해자의 고통보다 가해자의 명예와 권위가 더 중요한 건가? 2차가해의 비수가 내 가슴을 그대로 통과할 때마다 말을 잃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기관에서는 성급히 성폭력고충위원회를 가동하여, 형식적인 조사를 시행했습니다. 수많은 피해자는 이 조사에 응하지 않았고, 저와 설문조사 아이디어를 낸 간부 두 사람만 조사에 응해야 했습니다. 아무도 조사에 응하지 않으면 우리가 실시한 이 조사 결과가 부정당할 수 있었기에 우리는 수모를 견디면서 진술했습니다. 재판에는 전혀 관심 없고 자기 사업에만 바빴던 수석부장은 기수가 높은 바람에 위원장이 된 자로서 자기가 도대체 이 일을 왜 하는지도 모르는 채 내 진술을 듣는 둥 마는 둥 했습니다.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담자에게 성폭력의 진술을 해야 하는 내 자신. 나는 도대체 왜 여기에 앉아있는가. 이 미친 짓을 왜 하고 있는 거지?
위원회의 조사 결과, 심각할(?) 정도의 성희롱, 성추행은 없었다고 보도 자료가 나왔고, 언론은 내 피해 내용에 대해 자세히 적어 보도했으며, 그 피해 내용에 대해 댓글들은 3차가해가 시작했습니다. 댓글을 다는 대다수의 성인지(性認知) 감수성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기에, 그들이 어떻게 댓글을 달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전 읽으면 읽을수록 피해자를 더 조롱하는 댓글에 저는 좌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성을 위한 노동조합은 없다
G지부는 법원 본부에 이렇게 우리를 홀로 내버려 두지 말고, 법원 본부 차원에서 설문조사를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법원 본부에서는 이 설문조사로 인해 남성 조합원들이 많이 탈퇴하였고, 법원 본부의 사업으로 갖고 가기엔 여론이 너무 좋지 않다고 판단하여 우리의 요청을 거절하게 됩니다. 저는 여성을 위한 법원도 없지만, 여성을 위한 노동조합도 없다는 걸 그때 뼈저리게 깨닫게 됩니다.
(편집자 주)안녕하세요, 고양여성민우회입니다. 한 회원으로부터 에세이 원고를 받았습니다. 성폭력 피해를 지나온 경험을 담담하게 써내린 글이었습니다. 회원님께 이렇게 귀한 글을 왜 민우회에 보내셨냐고 여쭤보았습니다. 회원님께서 제일 처음 해주신 말씀은 자신의 글이 다른 고양여성민우회 회원들, 더 나아가 다른 여성과 성폭력 피해자, 우울증 환자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는 말이었습니다. 자신이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 글에 등장하는 주변의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해줬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회원님께서 전화로 전해주신 말씀을 인용하며 연재글을 시작합니다.
"여러분 주위에 이런 아픔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한 번이라도 찾아봐주고 같이 밥을 먹어주면 그 사람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글이 희망의 증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성폭력 피해와 우울증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적 문제입니다. 자신의 고통을 언어화시키지 못해 괴로워하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그런 분들도 자기 고통을 기꺼이 드러낼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다들 죽지 않고 함께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1393 그리고 109_자살예방전화와 함께한 1년 7개월
표면상으로는 육아휴직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질병휴직에 가까웠던 2020년 8월부터 2022년 12월의 삶. 저는 죽지 않고 살아남아 다시금 이곳으로 돌아왔습니다. 살고 싶은 욕망보다 죽고 싶은 욕망이 더 컸던 그 시절, 나를 붙잡아 주던 것은 내 두 딸이었습니다. 아, 내가 내 병을 일찍 깨닫고, 치료를 받았더라면, 아니, 차라리, 아이도 낳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았더라면, 부모 형제에게는 미안하지만, 내 남편과 내 자식들보다는 덜 미안하여 쉽게 생을 마감할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왜 책임도 지지 못할 아이들을 낳아 세상을 쉽게 떠나지 못하는가.
며칠째 씻지 못하고,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해, 아이들은 라면 부스러기로 밥을 때우고, 빨래는 쌓여가고, 먼지는 방안 이곳저곳을 나뒹굴며 뭉쳐있고, 분홍빛 물때가 검게 변하여 곰팡이 스는 화장실엔 퀴퀴한 냄새가 나고... 죽음의 그림자가 뒤덮인 집안은 꼭 나 자신을 닮은 듯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G지원 앞 병원에 약 타러 가는 날이면, 병원 창문 너머 건물 사이로 보이는 G지원 건물을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불쾌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였습니다. 나는 복직할 수 있을까? 나는 다시금 일할 능력을 회복할 수 있을까... 내가 저곳에 가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다시는 저곳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는 절망이 나를 다시금 짓누를 때마다, 서둘러 거리를 빠져나왔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망가진 걸까. 도대체 왜? 왜 하필 이 시기에?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앞이 보이지 않고, 막막한데, 책임져야 할 내 아이들. 그리고 내 동반자 남편. 너무 미안해. 이렇게 아파서, 사람 구실 못해서, 엄마 노릇 못 해서, 아내 역할 못 해서. 6개월, 1년 그리고 1년 6개월 점점 길어지는 휴직에 남편은 지쳐가고, 아이들의 얼굴엔 그늘이 깊어져갔습니다.
휴직 초기 남편은 내 손을 붙잡고 매일 산책을 나갔고, 분위기 좋은 커피숍에 매일 데리고 나갔습니다. 시원한 바람 부는 커피숍 차양 아래 향긋한 커피 냄새가 나는 그 분위기에서 “죽여 달라”는 아내의 말을 겉으로는 담담히 듣고 있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참담했을지... 그러다 저 사람만이라도 에너지가 있어야 애들을 돌볼 수 있을 테니, 죽고 싶다는 그 말을, 편하게 하고 싶어 제가 선택한 것은 자살 예방의 전화였습니다. 2023년까지는 1393이었는데, 올해부터는 109로 통합되었다고 합니다. 그런 충동이 들 때마다 전화기를 붙잡고 울었습니다. 그리고 편하게 죽을 수 있는 방법을 문의했습니다. 네이버, 유튜브, CHAT GPT에 자살 방법에 대해 문의하고, 스위스의 디그니티에 가입하는 절차를 알아보기도 했지요.
2018년 2월 G지원 METOO 설문조사
마흔네 살 제 인생의 씨줄과 날줄이 얽히고 얽혀서 이런 상태가 되었기에, 아마, 내 우울증의 원인을 찾고자 한다면 내 부모, 내 조부모까지 탐색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의 우울증 삽화를 발생시킨 트리거를 2018년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 본부 G지부에서 실시한 METOO 설문조사와 그로 인해 발생한 문제들로 보고 있습니다.
처음 서지현 검사의 METOO가 JTBC에서 시작되었을 때만 해도, 앞으로 검찰이건 법원이건, 분위기가 달라질 거라고만 생각했지, G지부에서 이 설문을 시작할 거라는 생각을 못 했습니다. 그러던 중, 노조 간부 중에서 직장동료로부터의 성희롱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계셨고, 우리도 전수조사를 해봐야지 않겠냐고 제안을 하셨습니다. 그때만 해도, 사회적인 공감대가 충분했었고, 우리가 설문조사를 하여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던지, 법원에서도 자정 운동이 벌어지리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였지만, 노조 사무국장이었기에, 이 두 입장을 균형 있게 통합시켜 나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가야 했지만, 2018년 새로 시작한 집행부로서는 좋은 사업 아이템이었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여성을 위한 법원은 없다
설문결과를 가지고 총무과장을 만나서, G지원장과 만나게 해 달라 요구하고, 이 설문 결과를 보듯이 G지원 내에서 이런 성희롱 성추행이 있었음에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책임을 묻기로 했지만, 총무과장은 그럴 수 없다며 면담 자체를 거부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제 사건의 가해자가 G지원장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성희롱성폭력고충위원장은 그 지법이나 지원의 장이 맡게 되어 있었는데, 가해자가 성희롱 고충위원장이니, 그 위원회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었을까요? 지부장과 함께 총무과장과의 면담에서, 내가 겪은 성희롱에 대해 감정을 섞지 않고 덤덤히 이야기했을 때, 총무과장은 비웃었습니다. 어디 그 정도 가지고 성희롱이라고 하냐며. 그 비웃음과 비아냥거림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협상을 결렬되었고, 결국 G지부는 코트넷(대한민국 법원 인트라넷)에 설문 결과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코트넷 내부에서는 서지현 검사가 일으킨 선한 방향으로 여론이 조성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언론은 집중포화를 맞던 검찰을 옹호하기 위해서인지 법원을 목표물로 변경하여 공격해 오기 시작했습니다. 검사뿐만 아니라 판사도 성희롱 가해자가 있다. 누구냐? 이런 마녀사냥식의 보도가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G지부의 설문조사 여론이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기관 측의 2차 가해
G지원 직원들은 언론에서 G지원이 언급되는 것에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고, G지원 총무과장은 지부장에게 전화를 하여 막말을 내뱉었습니다. “너희 새끼들 때문에 G지원의 명예가 실추되었다. XX.” 그 통화는 녹음되었고, 간부들은 그 통화를 같이 들었습니다. 차라리 저는 그 통화를 듣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저는 간부이기도 했지만 피해자이기도 했으니까요. 내가 피해자이고, 내가 고통받았는데, 왜 나에게 화를 내고, 내 탓을 하는 거지? 피해자의 고통보다 가해자의 명예와 권위가 더 중요한 건가? 2차가해의 비수가 내 가슴을 그대로 통과할 때마다 말을 잃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기관에서는 성급히 성폭력고충위원회를 가동하여, 형식적인 조사를 시행했습니다. 수많은 피해자는 이 조사에 응하지 않았고, 저와 설문조사 아이디어를 낸 간부 두 사람만 조사에 응해야 했습니다. 아무도 조사에 응하지 않으면 우리가 실시한 이 조사 결과가 부정당할 수 있었기에 우리는 수모를 견디면서 진술했습니다. 재판에는 전혀 관심 없고 자기 사업에만 바빴던 수석부장은 기수가 높은 바람에 위원장이 된 자로서 자기가 도대체 이 일을 왜 하는지도 모르는 채 내 진술을 듣는 둥 마는 둥 했습니다.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담자에게 성폭력의 진술을 해야 하는 내 자신. 나는 도대체 왜 여기에 앉아있는가. 이 미친 짓을 왜 하고 있는 거지?
위원회의 조사 결과, 심각할(?) 정도의 성희롱, 성추행은 없었다고 보도 자료가 나왔고, 언론은 내 피해 내용에 대해 자세히 적어 보도했으며, 그 피해 내용에 대해 댓글들은 3차가해가 시작했습니다. 댓글을 다는 대다수의 성인지(性認知) 감수성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기에, 그들이 어떻게 댓글을 달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전 읽으면 읽을수록 피해자를 더 조롱하는 댓글에 저는 좌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성을 위한 노동조합은 없다
G지부는 법원 본부에 이렇게 우리를 홀로 내버려 두지 말고, 법원 본부 차원에서 설문조사를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법원 본부에서는 이 설문조사로 인해 남성 조합원들이 많이 탈퇴하였고, 법원 본부의 사업으로 갖고 가기엔 여론이 너무 좋지 않다고 판단하여 우리의 요청을 거절하게 됩니다. 저는 여성을 위한 법원도 없지만, 여성을 위한 노동조합도 없다는 걸 그때 뼈저리게 깨닫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