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에세이] 얼지 마 죽지 마 부활할거야 - 5편 대속자(代贖者) 그리고 법원 사람들

사무국
2024-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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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안녕하세요, 고양여성민우회입니다. 한 회원으로부터 에세이 원고를 받았습니다. 성폭력 피해를 지나온 경험을 담담하게 써내린 글이었습니다. 회원님께 이렇게 귀한 글을 왜 민우회에 보내셨냐고 여쭤보았습니다. 회원님께서 제일 처음 해주신 말씀은 자신의 글이 다른 고양여성민우회 회원들, 더 나아가 다른 여성과 성폭력 피해자, 우울증 환자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는 말이었습니다. 자신이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 글에 등장하는 주변의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해줬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회원님께서 전화로 전해주신 말씀을 인용하며 연재글을 시작합니다.
"여러분 주위에 이런 아픔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한 번이라도 찾아봐주고 같이 밥을 먹어주면 그 사람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글이 희망의 증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성폭력 피해와 우울증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적 문제입니다. 자신의 고통을 언어화시키지 못해 괴로워하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그런 분들도 자기 고통을 기꺼이 드러낼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다들 죽지 않고 함께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명예보다는 나를 먼저 챙기신 시아버님

파주 월롱 농장에서 바쁜 우리를 대신해서 농사를 지어주시던 시아버님은 폐인처럼 집 안에서 나오지도 않고, 밥도 먹지 못해서 누워만 있는 며느리에게 싫은 내색을 단 한 번도 내비치신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밭에서 나온 채소로 김치를 담갔다며, 갖다 먹으라 주시기도 했지요. 

휴직 중에 시아버님이랑 밭에서 잡초를 캐면서, “아버님, 저 회사에 못 돌아가요. 너무 흉한 꼴을 많이 보여줘서 돌아가기가 무서워요.” 말씀드리니, 아버님께서는 “다른 사람 눈 신경 절대 쓰지 마라.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면서도 잘만 산다. 네 건강만 잘 챙기고, 회사에 복귀하고 싶으면 복귀하고, 아니면 회사 그만두면 된다.” 하시더라고요. 그 말씀이 어찌나 큰 위로가 되던지요. 자식 중에 유일하게 공무원이라 자랑할 트로피가 필요했던 친정엄마는 차마 그런 말씀 안 하셨는데…. 그때라도 정신 차렸다면, 아버님께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었을 텐데….


2022년 1월 31일, 일주일 전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허리 수술을 잘 마치셨던 시아버님은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날, 오전 10시에 부산 둘째 시누이가 다급하게 전화로 “올케가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아”하시기에, 설 명절 첫 휴일 아침 댓바람부터 술을 마신 남편을 원망하며 씻지도 않은 채 운전해서 남편을 태우러 외삼촌 댁으로 갔습니다. 남편을 조수석에 태우면서 한 소리 하려는데, 남편이 마치 어린아이처럼 울더라고요. 순간, 아버님의 상태가 정말 심각하다는 걸 알고, 아무 말 없이 무조건 액셀러레이터를 밟았습니다. 

저희가 도착할 때까지, 한 시간 반 동안 의료진들은 CPR을 번갈아 가면서 하고 있었지요. 병동 조치 실에서 CPR을 받는 시아버님을 보면서, 할 말을 잃었습니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우리와 병원 산책을 하셨던 아버님이 왜…. 여든의 나이에 5시간의 수술은 몸에 무리가 되었는지, 혈전이 떠돌다 아버님의 심장을 망가뜨렸다고 하더라고요. 시어머님에게 동의받고, 남편은 의료진에게 CPR을 그만해 달라 요청하였습니다. 


나를 대(代)신해서 죽으신(贖) 시아버님

남편이 아버님의 시신을 모시고, 부산으로 먼저 내려가고, 저는 아이들과 짐을 챙겨서 비행기로 부산으로 향했지요. 부산으로 가기 전에, 일단 염색약부터 사서 방치될 대로 방치된 흰머리를 염색했습니다. 시아버님 장례식장에 우울증으로 피폐해진 하나뿐인 며느리가 조문받는 것은 아버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되더라고요.

입관할 때, 가족들이 아버님께 한마디씩 하는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저는 말로는 “아버님, 건강하셔요, 평안하셔요."라고 했지만, 속으로는 “아버님, 죽고 싶은 건 저인데 왜 아버님이 돌아가셨나요. 아버님은 좀 더 평안히 살고자 수술하신 건데 죽으시고, 저는 죽고 싶은데 이렇게 살고 있어요. 저는 아버님의 죽음이 너무 부러워요. 아버님, 저 좀 데려가 주세요.” 되뇌었답니다. 

이 아이러니라니. 

마치 살고 싶다고 해서 사는 게 아니며, 죽고 싶다고 죽는 것이 무의미한 게 어차피 삶이 곧 죽음이며, 죽음이 곧 삶이 아니겠는가….

신(神)이 저에게 죽음에 대한 비밀을 알려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 비밀을 신이 알려주기 위해, 

저를 대신해서 시아버님은 돌아가셨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유가족들을 위로한 세 개의 법원 조화(弔花)

경남지방에서는 정월 초하루엔 장례식장에 가질 않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하필 아버님의 빈소가 정월 초하루에 만들어지는 바람에, 장례식장은 너무나 썰렁했습니다. 오죽하면, 장례식장 직원들도 준비가 안 되어서, 유족들 상주복도 세 시간이 지나서야 지급하더라고요. 새로 지어진 장례식장이라 깨끗했지만, 그 층에 빈소가 우리 집 하나여서, 오히려 휑했습니다. 

다들 명절 치르느라, 그리고 정월 초하루라 장례식 첫날은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아버님 가시는 길이 너무 초라해 보이고, 쓸쓸해 보여서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그래서 서영국 계장님께 명절이라는 실례를 무릅쓰고 전화를 드렸습니다. 시아버님이 돌아가셨고, 법원에서 조화(弔花)를 보내줄 수 있냐고. S 계장님은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법원에, 노조에 연락을 취해주셨지요.

대법원에서 하나, G 지원에서 하나, 그리고 법원 공무원노조에서 하나 총 세 개의 조화가 초라하고 휑했던 아버님 빈소를 가득 채워주셨습니다. 그 조화를 보면서 시어머님, 시누이들, 아주버님들은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저는 그동안 장례식장에 놓인 조화들을 보며, 허례허식이라 생각했는데…. 조화는 고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유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존재함을 그때 알게 되었지요. 제가 법원 공무원이라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아버님께 그리고 시댁 식구들을 위로해 드릴 수 있어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법원 사람들의 조의금(弔意金)

S 계장님께서 법원에 연락을 취하셨는지, 조문객을 맞이하는 동안, 스마트폰 알림이가 계속 울리더라고요. 조의금이 계좌로 들어오는 소리였습니다. 휴직자의 상사(喪事)는 안 챙겨도 그만인데, 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물질로 저를 위로하더라고요. 통장에 찍힌 이름들을 보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그 이름들이 너무나 그리웠거든요. 

내가 돌아갈 곳의 사람들. 

아, 그래, 나 법원 공무원이었지. 이들과 함께였지. 

이들은 나에게 빨리 돌아오라 손짓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 마음만으로는 당장 법원에 복직하고도 남을 만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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