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4월 9일 오후 2시부터 용산역 광장에서 진행된 낙태죄 폐지 2주년 4.9 공동행동 행진을 마치고 녹사평역 앞에 모여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고양여성민우회 활동가와 회원들
임신중지가 비범죄화 된 지 2년, 즉 ‘낙태죄’의 법적 실효가 상실된 지 2년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여성들의 임신중지 과정은 여전히 위험하고, 막막하고, 두렵습니다. 정부와 국회는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법과 제도를 아직까지도, 아무 것도 만들지 않았습니다. 임신중지 앞에 놓인 여성들이 찾을 수 있는 공식적인 정보가 하나도 없습니다. 어느 병원을 가야, 어떤 의사를 만나야 안전한 임신중지 관련 상담을 받을 수 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이러한 현실에 분노하는 여성과 시민들이 4월 9일 오후 2시, 용산역 광장에 모여 모두에게 안전한 임신중지 권리 보장, 유산유도제 도입, 임신중지의 건강보험 보장과 권리 보장을 위한 법과 제도 구축을 외쳤습니다. 현장에서 울려퍼진 참여자들의 발언을 소개합니다.
최예훈(색다른의원 원장,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
병원으로 전화가 한 통 걸려옵니다. 긴장된 목소리로 “임신인 것 같은데 당일에 진료 보고 곧바로 시술이 가능한지, 시술할 때 보호자 동의가 필요한지, 비용은 얼마인지”를 묻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하는지, 안전한 방법인지, 시술 후에는 얼마동안 안정해야 하는지, 별도로 주의해야 할 사항은 없는지와 같은 자신의 건강이나 안전에 대한 질문은 없습니다.
불법인지 아닌지, 믿을 만한 병원인지, 비용은 적절한 것인지, 방법은 괜찮은 것인지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채 인터넷이나 어플을 통해 온갖 관련 정보를 검색해보고 시간을 겨우 내어 찾아온 병원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불법은 아니지만 건강보험은 적용되지 않습니다. 법적으로 유산은 휴가 보장이 되지만 임신중지는 안됩니다.” “약으로 하면 수술과 비슷한 효과가 있지만 정부가 아직 약을 허가해 주지 않았어요, 그나마 대체해서 사용할 수 있는 약도 식약처에서 승인해주지 않았어요, 시술 후 생리가 시작하기 전에 피임이 필요해요. 하지만 보험은 안됩니다.”
더 이상 낙태죄는 없습니다. 이 사실을 환자도 알고 의사도 합니다. 이제 임신중지는 다른 의료서비스와 마찬가지로 본인이 원한다면 최대한 안전한 방법으로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말들을 여전히 진료실에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임신중지는 우리의 정단한 권리이고, 필수적인 의료서비스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할 때 임신을 하고, 우리가 원할 때 안전한 방법으로 임신중지를 할 권리가 있습니다.
고나영(장애여성공감 활동가)
장애여성은 몸과 장애에 맞는 병원을 찾기 못해 병원시설에 몸을 맞추거나 차별을 감수하며 병원진료를 보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물리적/정보적 접근이 어려워 주변인과 함께 병원에 방문할 경우 모든 정보는 보호자에게 전달되고, 임신중지 등의 중요한 결정도 보호자에게 확인합니다. 몸에 대해 장애여성의 욕구나 결정은 고려되지 않습니다.
저에게 안전한 임신중지의 권리와 재생산 권리는 단순히 아이를 낳고 낳지 않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월경, 연애, 섹스 등의 성과 재생산권리, 건강권, 임신, 출산, 양육의 전 생애과정에서 차별받지 않기 위한 요구이자 삶에서 중요한 결정을 온전히 할 수 있는 권리를 실현하는 과정입니다. 유산유도제 도입은 안전한 임신중지를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자 내 몸에 대한 결정에서 타인의 통제를 거부하고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방법입니다.
김영애(공공운수노조 위원장)
임신, 출산뿐 아니라 월경을 비롯한 일상적인 성/재생산 건강에 대한 권리는 모든 노동자들의 기본권입니다. 유/사산 휴가에 임신중지도 보장이 되어야 하고, 임신중지 후에도 몸을 회복할 수 있는 유급휴가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자체와 공공기관이 근로기준법과 다르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합니다. ‘낙태죄’가 폐지된지 이미 2년이 지났습니다. 정부는 여성노동자들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법/제도를 구축하고 지자체와 공공기관은 낡은 관행을 버려야합니다.
노동자들은 더 이상 임신중지가 낙인이나 편견으로 비밀스럽게 상담해야 하는 진료가 아니라 공식 의료체계와 건강보험 등 사회보장 체계를 통해 보장되어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안전한 임신중지는 단순히 동떨어진 행위가 아니라 한 사람의 건강과 삶의 조건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하는 문제이고, 건강보험과 사회보장을 통해 안전한 임신중지, 제대로 된 양육 환경을 보장하고 불평등을 해소하는 노력을 정부가 같이 해야 합니다.
[사진설명] 4월 9일 오후 2시, 용산역 광장에서 낙태죄 폐지 2주년 4.9 공동행동이 진행되고 있다. 참가 단체들의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고 참가자들이 자리에 앉아 발언자의 발언을 듣고 있다.
심청(고려대학교 여학생위원회)
출산을 해서 가정을 이룰 때, 혹은 그것을 위한 준비를 할 때만 존재하는 현재의 법은 재생산권이 아닙니다. 그저 여성이 임신, 출산을 할 때 건강한 상태인지 아닌지에 초점을 맞추는 ‘생식권’에 불과합니다.
저희는 모든 국민의 건강을 위해 국가에 요구합니다. 당장 필요한 것은 임신중지뿐 아니라 그 이후의 상황에서도 안전할 수 있는 국가책임이 명시된 법입니다.
양지혜(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활동가)
‘낙태죄’ 헌법불합지 판결 이후, 한국건강가정진흥원에서 이뤄진 임신중단 상담 597건 중 절반 이상은 청소년이었습니다. 그러나 청소년들에게 정부는 ‘낙태는 위기행동이다’, ‘미성년자는 보호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라는 절망적인 가이드라인만 제시했습니다.
청소년은 부모 동의 없이는 임신중지를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국가입니다. 여전히 임신중지를 원하는 청소년은 부모에게 알리지 못해 다른 이의 신분증을 빌리는 등 불법을 감수하고, 심지어는 적절한 의료절차를 밟지 못해 사망에 이릅니다. 정부는 청소년이 보호자 없이도 충분한 정보 속에서 안전하게 임신중지를 결정할 권리를 보장해야 합니다. 그 시작이 유산유도제 도입이며,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 보장입니다.
이낭산
(남동생이 속도위반으로 계획에 없던 결혼을 할 뻔했으나 결혼 준비 과정에서 남동생의 폭력성이 드러나 상대 여성이 임신중단 결정을 내리고 파혼하게 된 이야기 공유)
한국 사회에서 임신은 결혼제도와도 너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임신 때문에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결혼을 해야 하나요? 제가 경험한 세상에서 임신중단은 최소한의 비상탈출구였어요. 탈출구를 좀 안전하게 만들어주십시오. 탈출하다가 넘어지면 생명이 위험한 탈출구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안전한 탈출구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플루토
저는 ‘낙태’ 시술을 받은 당사자로, 제 경험을 나누고자 대전에서부터 기차를 타고 왔습니다. 헌법불합치 이후 4년 동안 정부가 적극적인 움직임을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술을 원하는 여성은 틀린 존재가 되었습니다. 시술을 받아 주는 병원을 찾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곳에서조차 눈치를 보고, 어떻게 책정이 된지도 모르는 거금을 한 번에 계좌 이체로 내지 않으면 예약을 잡을 수도 없습니다. 비용이 부담돼서 위민온웹을 들어가도 그곳에서 주는 미프진이 언제 도착할 지 알 수 없습니다. 한국에 도착하더라도 세관에 걸리면 무용지물입니다. 만약 그 사이에 임신 주차가 늘어나면 병원에서 청구하는 비용은 더 커집니다. 궁여지책으로 텔레그램에서 보관 상태를 알 수 없는 자궁수축제를 수십 배의 가격으로 사야합니다. 저는 아주 운이 좋아 시술을 받는데 성공했지만, 한 달 넘게 원인모를 부작용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병원을 가도 어떻게 해줄 수 없다는 말만 불친절하게 반복합니다. 마치 의사가 저에게 “낙태하면서 이 정도도 각오 안 했어요?” 라고 말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무려 120만원을 일시불로 냈는데도요! 명백한 의사의 불친절에도 저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찢어진 콘돔이 마치 제 탓인 것 같아서 눈물만 흘렸습니다. 이제 더는 저처럼 눈물 흘리고, 스스로를 탓하는 여성이 없어야 합니다. 제도적으로, 의료 보험으로 임신을 중단할 권리를 보장받아야 합니다. 합리적인 가격에, 원하는 시기에 건강하고 안전하게 병원에서 시술을 받고 위축되지 않을 권리,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국가가 보장해주어야 합니다. 약국에서는 미프진과 응급피임약을, 병원에서는 정당하게 시술받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제 더는 한 치도 양보할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타협할 수 없습니다.
[사진설명] 낙태죄 폐지 2주년 4.9 공동행동 참여자들이 용산 대통령 집무실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사진 윗쪽에 고양여성민우회 깃발이 보인다.
모든 참여자의 발언이 끝난 뒤 용산역 광장에서 출발해 대통령 집무실 옆을 지나 녹사평역으로 향하는 행진을 진행했습니다. 정권이 바뀌었기 때문일까요, 행진 장소가 대통령 집무실 근처를 지났기 때문일까요. 행진 참여자의 수보다 행진을 둘러싼 경찰 병력이 훨씬 많았습니다. 정말 이렇게까지 병력이 투입될 필요가 있었을까? 일반신고에 출동할 경찰 병력은 남아있는 걸까? 걱정이 될 정도로요. 모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임신중지 보건의료 체계를 공식화하고, 임신중지 관련 의료서비스를 국민건강보험을 통해 보장할 것을 국가에 요구합니다.
국가는 임신중지 관련 정보 시스템을 마련하라!
식약처는 하루 빨리 유산유도제 사용을 승인하라!
우리의 임신중지는 더 이상 불법도, 비밀도 아니다!
임신중지는 모두에게 보장되어야 할 당연한 권리이다!
작성자: 활동가 설이
[사진설명] 4월 9일 오후 2시부터 용산역 광장에서 진행된 낙태죄 폐지 2주년 4.9 공동행동 행진을 마치고 녹사평역 앞에 모여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고양여성민우회 활동가와 회원들
임신중지가 비범죄화 된 지 2년, 즉 ‘낙태죄’의 법적 실효가 상실된 지 2년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여성들의 임신중지 과정은 여전히 위험하고, 막막하고, 두렵습니다. 정부와 국회는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법과 제도를 아직까지도, 아무 것도 만들지 않았습니다. 임신중지 앞에 놓인 여성들이 찾을 수 있는 공식적인 정보가 하나도 없습니다. 어느 병원을 가야, 어떤 의사를 만나야 안전한 임신중지 관련 상담을 받을 수 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이러한 현실에 분노하는 여성과 시민들이 4월 9일 오후 2시, 용산역 광장에 모여 모두에게 안전한 임신중지 권리 보장, 유산유도제 도입, 임신중지의 건강보험 보장과 권리 보장을 위한 법과 제도 구축을 외쳤습니다. 현장에서 울려퍼진 참여자들의 발언을 소개합니다.
최예훈(색다른의원 원장,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
병원으로 전화가 한 통 걸려옵니다. 긴장된 목소리로 “임신인 것 같은데 당일에 진료 보고 곧바로 시술이 가능한지, 시술할 때 보호자 동의가 필요한지, 비용은 얼마인지”를 묻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하는지, 안전한 방법인지, 시술 후에는 얼마동안 안정해야 하는지, 별도로 주의해야 할 사항은 없는지와 같은 자신의 건강이나 안전에 대한 질문은 없습니다.
불법인지 아닌지, 믿을 만한 병원인지, 비용은 적절한 것인지, 방법은 괜찮은 것인지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채 인터넷이나 어플을 통해 온갖 관련 정보를 검색해보고 시간을 겨우 내어 찾아온 병원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불법은 아니지만 건강보험은 적용되지 않습니다. 법적으로 유산은 휴가 보장이 되지만 임신중지는 안됩니다.” “약으로 하면 수술과 비슷한 효과가 있지만 정부가 아직 약을 허가해 주지 않았어요, 그나마 대체해서 사용할 수 있는 약도 식약처에서 승인해주지 않았어요, 시술 후 생리가 시작하기 전에 피임이 필요해요. 하지만 보험은 안됩니다.”
더 이상 낙태죄는 없습니다. 이 사실을 환자도 알고 의사도 합니다. 이제 임신중지는 다른 의료서비스와 마찬가지로 본인이 원한다면 최대한 안전한 방법으로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말들을 여전히 진료실에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임신중지는 우리의 정단한 권리이고, 필수적인 의료서비스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할 때 임신을 하고, 우리가 원할 때 안전한 방법으로 임신중지를 할 권리가 있습니다.
고나영(장애여성공감 활동가)
장애여성은 몸과 장애에 맞는 병원을 찾기 못해 병원시설에 몸을 맞추거나 차별을 감수하며 병원진료를 보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물리적/정보적 접근이 어려워 주변인과 함께 병원에 방문할 경우 모든 정보는 보호자에게 전달되고, 임신중지 등의 중요한 결정도 보호자에게 확인합니다. 몸에 대해 장애여성의 욕구나 결정은 고려되지 않습니다.
저에게 안전한 임신중지의 권리와 재생산 권리는 단순히 아이를 낳고 낳지 않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월경, 연애, 섹스 등의 성과 재생산권리, 건강권, 임신, 출산, 양육의 전 생애과정에서 차별받지 않기 위한 요구이자 삶에서 중요한 결정을 온전히 할 수 있는 권리를 실현하는 과정입니다. 유산유도제 도입은 안전한 임신중지를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자 내 몸에 대한 결정에서 타인의 통제를 거부하고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방법입니다.
김영애(공공운수노조 위원장)
임신, 출산뿐 아니라 월경을 비롯한 일상적인 성/재생산 건강에 대한 권리는 모든 노동자들의 기본권입니다. 유/사산 휴가에 임신중지도 보장이 되어야 하고, 임신중지 후에도 몸을 회복할 수 있는 유급휴가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자체와 공공기관이 근로기준법과 다르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합니다. ‘낙태죄’가 폐지된지 이미 2년이 지났습니다. 정부는 여성노동자들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법/제도를 구축하고 지자체와 공공기관은 낡은 관행을 버려야합니다.
노동자들은 더 이상 임신중지가 낙인이나 편견으로 비밀스럽게 상담해야 하는 진료가 아니라 공식 의료체계와 건강보험 등 사회보장 체계를 통해 보장되어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안전한 임신중지는 단순히 동떨어진 행위가 아니라 한 사람의 건강과 삶의 조건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하는 문제이고, 건강보험과 사회보장을 통해 안전한 임신중지, 제대로 된 양육 환경을 보장하고 불평등을 해소하는 노력을 정부가 같이 해야 합니다.
[사진설명] 4월 9일 오후 2시, 용산역 광장에서 낙태죄 폐지 2주년 4.9 공동행동이 진행되고 있다. 참가 단체들의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고 참가자들이 자리에 앉아 발언자의 발언을 듣고 있다.
심청(고려대학교 여학생위원회)
출산을 해서 가정을 이룰 때, 혹은 그것을 위한 준비를 할 때만 존재하는 현재의 법은 재생산권이 아닙니다. 그저 여성이 임신, 출산을 할 때 건강한 상태인지 아닌지에 초점을 맞추는 ‘생식권’에 불과합니다.
저희는 모든 국민의 건강을 위해 국가에 요구합니다. 당장 필요한 것은 임신중지뿐 아니라 그 이후의 상황에서도 안전할 수 있는 국가책임이 명시된 법입니다.
양지혜(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활동가)
‘낙태죄’ 헌법불합지 판결 이후, 한국건강가정진흥원에서 이뤄진 임신중단 상담 597건 중 절반 이상은 청소년이었습니다. 그러나 청소년들에게 정부는 ‘낙태는 위기행동이다’, ‘미성년자는 보호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라는 절망적인 가이드라인만 제시했습니다.
청소년은 부모 동의 없이는 임신중지를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국가입니다. 여전히 임신중지를 원하는 청소년은 부모에게 알리지 못해 다른 이의 신분증을 빌리는 등 불법을 감수하고, 심지어는 적절한 의료절차를 밟지 못해 사망에 이릅니다. 정부는 청소년이 보호자 없이도 충분한 정보 속에서 안전하게 임신중지를 결정할 권리를 보장해야 합니다. 그 시작이 유산유도제 도입이며,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 보장입니다.
이낭산
(남동생이 속도위반으로 계획에 없던 결혼을 할 뻔했으나 결혼 준비 과정에서 남동생의 폭력성이 드러나 상대 여성이 임신중단 결정을 내리고 파혼하게 된 이야기 공유)
한국 사회에서 임신은 결혼제도와도 너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임신 때문에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결혼을 해야 하나요? 제가 경험한 세상에서 임신중단은 최소한의 비상탈출구였어요. 탈출구를 좀 안전하게 만들어주십시오. 탈출하다가 넘어지면 생명이 위험한 탈출구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안전한 탈출구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플루토
저는 ‘낙태’ 시술을 받은 당사자로, 제 경험을 나누고자 대전에서부터 기차를 타고 왔습니다. 헌법불합치 이후 4년 동안 정부가 적극적인 움직임을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술을 원하는 여성은 틀린 존재가 되었습니다. 시술을 받아 주는 병원을 찾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곳에서조차 눈치를 보고, 어떻게 책정이 된지도 모르는 거금을 한 번에 계좌 이체로 내지 않으면 예약을 잡을 수도 없습니다. 비용이 부담돼서 위민온웹을 들어가도 그곳에서 주는 미프진이 언제 도착할 지 알 수 없습니다. 한국에 도착하더라도 세관에 걸리면 무용지물입니다. 만약 그 사이에 임신 주차가 늘어나면 병원에서 청구하는 비용은 더 커집니다. 궁여지책으로 텔레그램에서 보관 상태를 알 수 없는 자궁수축제를 수십 배의 가격으로 사야합니다. 저는 아주 운이 좋아 시술을 받는데 성공했지만, 한 달 넘게 원인모를 부작용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병원을 가도 어떻게 해줄 수 없다는 말만 불친절하게 반복합니다. 마치 의사가 저에게 “낙태하면서 이 정도도 각오 안 했어요?” 라고 말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무려 120만원을 일시불로 냈는데도요! 명백한 의사의 불친절에도 저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찢어진 콘돔이 마치 제 탓인 것 같아서 눈물만 흘렸습니다. 이제 더는 저처럼 눈물 흘리고, 스스로를 탓하는 여성이 없어야 합니다. 제도적으로, 의료 보험으로 임신을 중단할 권리를 보장받아야 합니다. 합리적인 가격에, 원하는 시기에 건강하고 안전하게 병원에서 시술을 받고 위축되지 않을 권리,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국가가 보장해주어야 합니다. 약국에서는 미프진과 응급피임약을, 병원에서는 정당하게 시술받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제 더는 한 치도 양보할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타협할 수 없습니다.
[사진설명] 낙태죄 폐지 2주년 4.9 공동행동 참여자들이 용산 대통령 집무실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사진 윗쪽에 고양여성민우회 깃발이 보인다.
모든 참여자의 발언이 끝난 뒤 용산역 광장에서 출발해 대통령 집무실 옆을 지나 녹사평역으로 향하는 행진을 진행했습니다. 정권이 바뀌었기 때문일까요, 행진 장소가 대통령 집무실 근처를 지났기 때문일까요. 행진 참여자의 수보다 행진을 둘러싼 경찰 병력이 훨씬 많았습니다. 정말 이렇게까지 병력이 투입될 필요가 있었을까? 일반신고에 출동할 경찰 병력은 남아있는 걸까? 걱정이 될 정도로요. 모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임신중지 보건의료 체계를 공식화하고, 임신중지 관련 의료서비스를 국민건강보험을 통해 보장할 것을 국가에 요구합니다.
국가는 임신중지 관련 정보 시스템을 마련하라!
식약처는 하루 빨리 유산유도제 사용을 승인하라!
우리의 임신중지는 더 이상 불법도, 비밀도 아니다!
임신중지는 모두에게 보장되어야 할 당연한 권리이다!
작성자: 활동가 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