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담플러스]인터뷰: 그렇게 두려워하면 끝도 없어. 우리가 단단해져야 하는 거지! (쭌)-②

하담
2023-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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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담플러스]에서는 하담을 퇴소한 하담인들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인터뷰, 모임 후기 등을 통해 하담 이후의 삶을 살피며 유대와 연대의 끈을 이어가는 한편, 쉼터 너머를 고민하는 여정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쭌님과의 인터뷰 내용이 많아져 총 2편으로 나눠 싣게 되었다. 1편에서는 자신을 사랑하기로 마음먹기까지의 이야기를 2편에서는 그녀에게 하담과 어머니의 의미가 어떠한지를 중심으로 나누었다. 인터뷰 때 놓친 퇴소인을 위한 지원 정책에 대한 아이디어는 추가 질문으로 하였고 문자로 받은 답을 첨가했다.



Q. 하담에서 지낼 때 책을 많이 읽었던 게 기억이 나요.

A. 할 게 없었어요. 저는 책 읽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근데 제가 재판 과정에 있어서 학교도 안 나갔었잖아요. 시간이 좀 많았고, 할 수 있는 건 한정돼 있으니까. 그 당시에는 두려워서 밖에도 잘 못 나가고 이랬을 때여서... 근데 (하담) 책장에 책이 많더라고요. 저는 그때부터 약간 재테크 이런 거에 관심이 있어서 가지고.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이 책이 있었어요.

(재태크에 관심이 있었어요?) 제가 재태크에 관심이 있어서 접한 게 아니라, 하도 아버지였던 사람이 돈에 대해서 너무 힘들게 했고 그거에 대해서 스스로도 너무 힘들었고.. 그러니까 어릴 때부터 너무 그런 소리를 많이 듣고 다니니까.. 지긋지긋해. 진짜 가난은 죈가? 어린 나이에도 돈을 많이 벌려면 왜 공부해야 하지?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돈 없는 것을 벗어나기 위한 거는 돈을 버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 책을 사실 다 이해는 못 했는데 그냥 생각보다 흥미롭더라고요. 읽은 김에 다른 것도 읽어볼까 하면서 이제 다른 것도 막 읽었고, 다른 것도 막 읽다가... 반 정도 되니까 읽은 김에 여기 있는 거 다 읽어보자. 그냥 그렇게 됐던 것 같아요.

 

근데 그 당시에 느꼈던 게... 다시 학교로 복귀했을 때 친구들이랑 편지 나눠 주고 뭐 이런 시간이 있었어요. 제가 뭐라고 썼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엄청 글을 잘 썼나 봐요. 친구가 “너 근데 쉬는 동안 책 많이 읽었다더니 그게 효과가 있나 봐. 어떻게 이런 표현을 해?” 그러면서 약간 감동을 먹은 거예요. 그러고 나서부터 다른 친구들이 왜 나한테는 편지 안 써줘? 해서 몇 명에게 다 써봤어요. 근데 다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냐 그런 말들을 하더라고요. 그 당시에는 진짜 책을 읽은 효과가 있구나!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생각하는 방향이나 상상력이나 이걸 말로 풀어내는 것이나.

 

저는 심심해서 그랬던 것도 있어요. 읽다 보니까 다른 책도 읽어볼까 하다... 그러다 보니 읽는 김에 다 읽어볼까 해서...

 

Q. 쭌님에게 하담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A. 하담에서 지내면서 좋은 것도 있고 안 좋은 것도 있었지만, 일단은 이미 상처를 입고 온 친구들이 모여 있잖아요. 그리고 단체 생활 자체가 원래 힘들잖아요. 그런 거에서 좀 더 배가 돼서 돌아오는 것도 있는 것 같기는 해요. 그런 부분에서 좀 힘들었는데... 그러면서도 누군가와 같이한다는 게 또 의지가 됐던 것도 있고. 사실 하담에 있지 않았으면, 물론 샘들이 다 해주신 거지만, 이런 게 없었더라면 저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지 약간 상상이 안 돼요.


돌이켜보면 사실 그전에는 문화생활이라는 것도 잘 못 했는데 여기에 들어오고 나서 그런 거를 프로그램으로 많이 겪잖아요. 그 당시에는 진짜 좀 귀찮은 것도 있고 내키지 않아서 하기 싫은 것도... 사실은 그게 되게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감사함을 간과했던 거죠. 예를 들어서 이거는 나라에서 막 이렇게 하는 거고, 뭔가 내가 보호받고 있다는 마인드에 갇혀서 이거를 당연시해... 그런 친구들이 있을 거예요. 이거를 당연시하면 안 되는 게 이게 되게 감사한 일이거든요.

이런 계기가 없었으면 사실 얼마나 더 상처를 받고, 스스로 나락으로 보냈을지 몰라요. 샘들이 힘들 때 상담해 주고. 돌이켜 봤을 때 참 감사한 거예요. 이런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도움을 받아서 자립할 수도 있었던 거고.

 

사실 그 안에서 멋대로 행동하는 아이들이 너무 많잖아요. 왜냐하면, 그걸 약간 당연시해서 그래요. 나는 보호받을 존재고, 나는 보호받는 기관에 들어와 있고 선생님들은 그냥 일이고. 약간 이런 식으로 생각해, 자기도 모르게. 모든 건 당연한 거 없고 내가 지금 받고 있다는 거에 대해서 감사하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그게 아니었다면 얼마나 망가졌을지... 만약에 그 누구도 없었다면? 이런 생각이...

 

그래서 의미로 돌아보자면, 물론 찾아간 거는 저랑 동생이지만, 결국은 하담과 샘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거기서 탈출할 수 있었던 거죠. 그리고 거기서 보호받은 상태에서 자립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됐고요. 그랬기 때문에 지금 살아있는 거고. 그런 과정에서 힘든 고난을 겪었음에도 지금 살아서 잘 지내고 있고. 제가 샘들이랑 이렇게 오래 연락하게 될지 몰랐어요. 사실 이것 자체도 자산이라고 생각해요. 그냥 고마운 게 커요. 그렇게 보면 당연한 건 하나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나마 온전하게 내가 살아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하담이라는 보호 기관이 없었다면 지금 이런 마인드를 갖고 살 계기조차도 없었을 수 있어요. 그래서 (하담인들이) 외부에 있는 친구들이랑 다른 건 당연하니까 다른 방법을 만들어가는 거에 집중해야지, 달라서 힘들고 괴롭다는 거에 집중해서 오히려 보호를 해줘서 감사한 하담의 존재를 미워하거나 그렇게 생각 안 했으면 좋겠어요.

 

Q. 어머니와 함께 하담에서 지내셨죠. 유사한 상황에 놓인 모녀가 있다면 하담에서 함께 지내는 것을 추천하고 싶나요?

A. 저는 따로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가족이라는 게 의지가 되는 것만은 아니거든요. 또 다른 친구들한테 위화감을 줄 수도 있거든요. 따로 있는 게 좋은 게 온전히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지내도 엄마랑 같이 있는 거랑 없는 거랑은 좀 차이가 있긴 있어요. 나도 개인만의 시간도 보내봐야 하고 아예 다른 사람들이랑도 어울리고 그래 봐야 좋다고 생각해요. 어머니도. 나한테는 엄마지만 엄마 자신으로 보면 누구의 엄마가 아니라 엄마 자체란 말이에요. 그리고 엄마도 뭔가 상처가 있거나 힘들면 아이 같은 건 똑같은 거 같아요.

 

엄마라는 타이틀이 있어서 계속하는 거지. 엄마도 엄마만의 시간을 보낼 필요가 있고, 나도 나만의 시간을 보낼 필요가 있고. 그리고 이렇게 (한 장소에서) 같이 상담을 받는 거는 안 좋은 것 같아요.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잖아요. 각자 자기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뭔가 말을 하려면 떨어져 있는 게 낫고. 엄마도 식당 다니면서 하담에서 샘들이랑 요리 같이하고 그것도 애매했어요. 생각해 보면 엄마도 (엄마라는 역할에) 너무 절어져 있어서 그런 거예요. [당시 어머니는 자립을 위해 조리사 자격증을 준비하면서 식당에 취업 하시고, 하담에서 취사 준비도 같이 해주셨다.]

 

(어머니도 다른 곳에서 지내셨을 때 오히려 누구의 엄마가 아닌 가정폭력 피해자로서 피해 치유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럴 수도 있어요. 왜냐면은 나도 모르게 의지하는 게 있어요. 서로 가족이니까 아무리 싫어해도. 남동생은 따로 00(타 시설)에 있었는데 어쨌든 혼자 밖으로 잘 다니고 잘 살잖아요. 그런 거 보면 영향이 있는 거 같기도 하고. 결국은 어떤 관계라는 것보다는 자신이 제일 중요하고, 내가 괜찮아야 남들과의 관계도 괜찮으므로 가족이라는 거를 별개로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혼자 있어 보는 게 처음에는 좀 어색하고 그럴지 몰라도 나중에 갔을 때 훨씬 도움이... 자립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더 도움이 되고. 사회로 나가기 전에도 어느 정도 연습이라고 생각을... 어머니도 평생을 누구의 엄마 이렇게 살았다가 원했던 건 아니었어도 다른 사람과 같이 지내볼 그런 게 있고, 또 자기의 내면을 진심으로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 있으면 훨씬 좋을 거 같아요. 개인으로 가야죠.

 

엄마는 (아빠와) 더 오래 살았기 때문에 억눌린 게 더 많을 수 있거든요. 사람마다 사연이 다르고 보낸 시간이 다르잖아요. 그거를 다 개별적으로 봐야지 가족이라고 같이 하는 거는 저는 아닌 것 같아요. 가끔 만나는 시간을 가지더라도 별도로 다 각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게 훨씬 나중에 도움이 될 것 같아요.


Q. 어머니에 대한 감정에 변화가 있었다고 했었어요. 좀 더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요?

A. 사람이 살면서 생각이 달라지는 게... 제가 고등학교 때 하담 들어가기 전에 아빠가 건설 현장에서 엄마를 데리고 일을 갔어요. 저희도 데리고 갔어요. 근데 애들이니까 차에 있었어요. 아빠가 막 욕하면서 엄마를 막 부르는 거예요. 그랬더니 양손에 페인트랑 시멘트 같은 무거운 거 들고 “갈게요~” 하면서 달려갔는데 그 뒷모습이 너무 슬픈 거예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제가 차에서 울었어요.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그때 마음먹었어요. 내가 언젠가는 엄마를 고생시키지 말아야지. 내가 책임져야겠다라는... 어떻게 보면 좀 헛된 책임감? 엄마 저런 일 안 시킨다. 그리고 아빠한테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는 그런 책임감, 이런 걸 마음먹게 된 거예요.

 

그런 마음으로 살다가 이제 다 끝나고, 하담에서 나오고 이렇게 살 때 사실 그때도 엄마는 내가 항상 모시고 살고... 약간 이런 생각을 가졌던 것 같아요. 그냥 엄마 얘기를 들어보면 엄마가 어릴 때부터 (부모로부터) 사랑을 제대로 못 받은 거예요. 근데 어린 나이에 나와서 결혼한 게 아빠였는데, 저런 인간 만나서... 엄마 인생이 너무 안쓰러운 거예요. 그래서 나는 벗어나면 꼭 엄마는 내가 책임져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아빠와 이혼하면서) 재산 분할 받고 엄마가 다 날려 먹었잖아요. (엄마가) 쓰고 막이래서... 그때부터 약간 돈을 쥔 순간부터 사람이 태도가 변하는데 거기서 아빠의 모습이 약간 보이면서 좀 싫어했었어요. 제가 싫어했었는데 일련의 과정을 겪고 나서 이제 결국은 돈 없어지고... 그럼에도 어쩌겠어요. 가족이니까 내가 책임져야 하니 일자리를 막 도전하면서 여기저기 다니면서 돈 벌고...

 

(동생에게도 같은 책임감을 느끼나요?) 아닌 것 같아요. 제가 어떻게 생각했냐면 첫 번째는 아빠한테서 벗어나고 싶고 두 번째는 저런 일을 안 했으면 좋겠다, 내가 잘 돼서. 엄마는 너무 힘들게 살았으니까 이제는 고생 안 하시고... 이런 마음으로 했던 게 약간 독이 된 거긴 하죠.


그런 거에 비해 동생은 젊으니까 쟤는 뭐 알바를 하든 뭘 하겠지. 약간 이런 생각이 들어요. 동생도 안쓰러운 마음이라는 게 항상 있어서 제가 용돈도 좀 많이 주곤 했는데, 책임져야겠다, 이런 생각은 잘 안 했어요. 엄마에 대해서만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지내다가 나중에는 엄마가 일을 잘 안 하고 계속 누워 있고, 뭔가 경제 활동을 전혀 안 하니까 너무 힘에 부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하나하나 다 쌓이면서 나중에 좀 터지더라고요. 못 버티겠더라고요. 처음에는 내가 엄마를 잘 살게 해 주고 싶어서, 고생시키기 싫어서 한 거였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나는 너무 힘이 부치고, 엄마는 오히려 나태해져서 아무것도 안 하려고 하니까 그게 너무 꼴 보기가 싫은 거예요.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내가 엄마를 너무 싫어하는 거예요.

그러면서도 너무 걱정돼... 완전 애증인 거죠. 내 눈에는 항상 엄마는 안쓰럽고 뭔가 불안한 존재, 약간 자식처럼... 그러다가도 너무 미운 거야, 어떻게 딸이 이렇게 고생하고 힘들 때 저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저럴 수가 있지? 내가 엄마라면 안 그럴 텐데.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원망스러운 거예요.

근데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결국은 내가 상처받을까 봐 그랬다는 결론을 내기는 했는데, 이런 말들을 엄마한테는 잘 못 했어요. [손으로 목을 가리키며] 그냥 여기까지 막 차는데... 말해도 엄마가 대답을 잘 안 하거든요. 그거에 지친 것도 있었지만, 그냥 엄마한테 나쁜 소리, 상처받을 만한 소리를 하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힘들었던 것 같아요. 힘든데 또 말은 못 하겠고, 어떨 때는 또 너무 안쓰럽고... 마냥 그런.


생각해 보니까 내 마음이 변한 거죠, 솔직히. 책임감을 가졌던 것도 나고, 변한 것도 다 나죠. 그러니까 엄마를 이렇게 미워할 필요가 있나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그럼에도 사람인지라 (웃음) 내가 엄마에게 사회적으로 알려진 엄마 프레임을 씌워 놨기 때문에 엄마면 당연히 자식을 챙겨야 하고 엄마는 여자보다 강하고 뭐 이런 말들 있잖아요. 그런 프레임을 씌워서 내가 자꾸 거기에 정형화된 거에 맞추려고 하니까, 그거에 엄마가 못 미치니까 자꾸 엄마를 더 미워하는 걸까? 이런 식으로 풀면서 지내다가... 이렇게 가슴이 복잡하고 힘든데도 엄마한테 왜 제대로 말을 못 하고, 왜 항상 저러고 있는데도 말 한마디 잘 못 하고 (이 상황을) 계속 냅둘까? 생각을 했는데 결국은 상처 주기 싫고, 그 상처로 인해서 내가 상처받기 싫은 거였어요. 결론으로 그냥 내가 엄마를 사랑하는구나 인정해 버렸어요.

생각하기도 싫었거든요. 엄마가 너무 미워서, 사랑은 무슨... 진짜 짜증 나 죽겠는데. 그랬는데 어느 순간 탁 이렇게 생각이 드는 거예요. 결국은 내가 인정하기 싫어서. 처음에 마음먹었던 것도 그렇고, 그냥 엄마를 사랑해서 지키고 싶었던 건데... 아, 내가 이렇게 됐구나. 그냥 저한테는 엄마가 약간 좀 반대되기는 한데... 약간 아픈 손가락. 자식 같은 느낌...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지 않고 방임했다고 어머니를 원망하거나 만나지 않는 사례도 있어요) 솔직히 이건 사람 성향 차이도 큰 것 같고... 내가 오히려 엄마를 보호해주고 싶은 존재로 여기게 된 것으로 기억하는 순간은 열일곱 살이지만 아마도 그 전부터 거의 형성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하도 어릴 때부터 그런 거 많이 봤기 때문에. 그리고 항상 엄마는 아빠한테 약간 조금 학대당하는 느낌이었잖아요. 나를 보호해 줄 거라는 기대가 없었던... 그런 거였을까요. 내가 뭘 보호해줘야 할 것 같은데 그거를 항상 보고 자라서 너무 안쓰러웠어요. 그리고 엄마가 다른 가족이 없어요. 자식인 나라도 해야겠다는 책임감이 있거든요. 사실 그런 게 아니었다면 이 정도로는 안 생겼을 것 같거든요.

그리고 사람 차이인 거 같아요. 왜냐하면, 내 동생은 그렇지가 않아요. 어떻게 보면 엄마라는 게 딸이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나랑 좀 비슷하다고 했는데... 약간 뭔가 약한 존재라는 나의 모습도 엄마한테 투영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완벽히 정의할 수는 없지만 흘러가는 과정들을 보면 그냥 그런 생각들이 모여서 그렇게 됐던 것 같아요.

(유사한 상황에서 어머니가 아버지와 관계를 끊지 못하기도 하는데, 쭌님의 어머니는 함께 집을 나와 남편과는 이혼하고 인연을 끊으셨어요. 당연해 보이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분들도 꽤 있죠) 그거는... 결론적으로는 그렇게 됐지만, 과정은 조금 있었어요. 일단은 엄마한테 하담에 가기 전에 제가 엄마한테 아빠 몰래 나가자고 했는데 엄마가 싫다고 그랬었어요. “너네끼리만 나가라.” 두려움이 컸던 것 같아요. 엄마는 부모의 사랑도 못 받고 20살 되기 전에 도망쳐 나와 (남편을) 만나서, 저를 가져 결혼을 21살에 했었기 때문에. 그러니까 처음부터 사랑받았던 게 온전치가 못하니까... 이 관계가 깨지면 가족도, 기댈 곳도 없던 거예요. 없으니까 무서웠던 거지, 애들은 어리고. 이렇게 엄마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보장된 게 하나도 없잖아요. 결혼하고 너무 어린 나이부터 살림살이하다가 아빠가 데려가는 현장에서 일하면서... 수동적인 거잖아요. 그랬던 사람이 이제 애들을 데리고 사회에 나가기가 엄청 두려웠겠죠. 그때 사실 엄청 실망했지만 엄마한테...

(나가자고) 여러 번 얘기했어요. 그러고 나서 한 번 도망치려다 실패를 했어요. 아빠가 갑자기 일찍 들어오는 바람에. 그랬는데 며칠 지나니까 또 잠잠해진 거예요, 엄마가 나가려던 생각이.

그러고 좀 심하게 아빠가 저한테 그러고 나서... 엄마한테 빌면서 얘기를 했어요, 동생도 같이. “사실 최근에 더 심해졌다. 이런 이런 일까지 겪었다”라고 얘기를 했어요. 그러고 나서 나오게 된 거죠.

그렇게 나왔는데 “처벌을 원하냐? 원하지 않느냐?” 민우회에서 만나서 얘기를 하는데 엄마가 그때도 처벌하기를 원치 않는다고 했어요. 정신 차리라고 하면서 민우회 샘들이랑 동생이랑 정말 설득해서 약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두려움이 엄청 컸겠죠, 엄마가. 엄마가 딱 결정했다고 하긴 좀 뭐 해요. 결국은 주변 사람들이 다 해서 한 거니까...

(지금은 어떠세요? 어머니가 나온 것에 대해 후회하신다거나, 잘했다고 생각하시거나... 그런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있나요?) 그런 얘기를 잘 안 해요. 후회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가끔가다 그런 얘기가 나와요. 왜냐하면, 지금 출소하는 것 때문에... 어떻게 보면 두려운 존재잖아요. 그런 얘기를 간혹가다가 하면 그냥 진저리치고... 처음엔 무서워하다가 이제는 별로 안 무서워해요. 엄마한테도 “그렇게 두려워하면 끝도 없어. 우리가 단단해져야 하는 거지! 이렇게 생각할수록 자꾸 그런 일만 생기고, 생각만 하니까 그냥 괜찮다고 생각해~ 나와 봤자 힘이 있어? 뭐가 있어? 늙어 가지고 인제 와서 뭐 어쩔 거야! 지금 우리가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라고 하는데...

 

Q. 이름을 바꾸셨는데 마지막으로 개명에 관해 얘기해 볼까요? 이름을 바꾸게 된 동기가 있나요?

A. 사실은 피는 못 속이겠지만... 아버지 성(姓)을 따르는 것 자체가 그 당시에 너무 혐오스럽고, 아빠와의 모든 걸 다 끊고 싶어요. 또 이름이 착한 아가씨 이런 뜻이에요. 너무 싫은 거예요. 이래서 진짜 인생도 그렇게 억지로 착하게 그냥 바보처럼 산 것 같고... 그래서 바꿨죠.

(작명소에서 이름 바꾸신 거라고 그랬죠?) 네, 맞아요.

(바꿔 보니 어때요?) 처음에는 약간 낯선데 나중에는 그냥 내 이름처럼 돼요. 그리고 뭐랄까 내 스스로 그나마 이제 다른 새로운 시작이라는 그런 느낌이었죠.

(하담인들 중에도 이름 바꾸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 계시는 데 혹시 팁이 있을까요?) 사실은 그거 고르는 방법이 내가 불렀을 때 입에 좀 더 잘 붙는 애를 추린 다음에 주변인들한테 이걸로 불러달라고 시켜봐야 해요. 불렀을 때 뭐가 더 자연스러운지, 좀 더 괜찮은지 이런 걸 보면 그게 자기 생각이 되는 것 같아요.

 

Q. [추가질문] 퇴소인들에게 어떤 지원이 있으면 좋을까요?

1) 시설 퇴소자 지원기간의 확대

시설 퇴소자 전형 전월세 제도가 퇴소 후 10년 내 신청할 수 있도록


2) 심리상담 프로그램

1:1 상담, 그룹 마음챙김 등


3) 문화의날 알림이(민우회 소식지, 좋은 글, 도서, 공연 등)

오픈톡채널 만들어서 월 1회씩 톡 전송으로 연결감 주고 자발적 참여할 수 있게끔 (끝) 

 

<사진설명> 빨간색의 슈퍼문이 뜬 하늘

“달은 어둠이 와야 빛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빛난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 그 자체로 언제나 빛난다는 걸 표현하고 싶어 친구가 찍어 준 슈퍼문 사진을 보냅니다” (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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