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2023 여성노동자대회

사무국
2023-03-07
조회수 1452

[사진설명] 고양여성민우회 활동가와 회원들이 3월 4일 보신각 앞에서 열린 2023 여성노동자대회 현장에서 깃발과 현수막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세상이 후퇴해도 우리는 앞으로

연대하는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

 

우리는 폭력없는 일터를 원한다

여성노동자에게 안전한 일터를

 

니 커피는 니가 타라!

니 손님도 니가 접대해라!

 

성차별적 조직문화 박살내고

성평등한 조직문화 쟁취하자

 

성차별적 농담 재미없다

일터에선 일만 하자!

 

비정규직 철폐 성차별 철폐

노동3권 완전 보장하라


[사진설명] 3월 4일 보신각 앞에서 열린 2023 여성노동자대회 현장


한국여성민우회 공동대표 몽실의 사회로 시작된 2023년 한국여성노동자대회! 현장에서 뜨겁게 울려퍼진 여성노동자 여섯 명의 발언 내용을 공유합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덕성여대분회 윤경숙 분회장

평생 전업주부로 노동하다 50대가 되어 일하려고 하니 할 수 있는 일이 청소노동 뿐입니다. 시급 400원 일당 3200원을 올리기 위해 투쟁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 삶에는 단 한 번도 공짜가 없었습니다. 병든 아버지를 대신해 가장 역할을 하는 엄마를 도와야하는 딸이었고 동생들을 돌봐야하는 장녀였고 시부모님을 돌봐야 했던 며느리였고 지금도 은퇴한 남편을 대신해 가정에 경제적 책임을 지고 있는 입장입니다. 요즘은 경력단절이라는 표현보다는 경력이동이라는 표현을 쓴다고 합니다. 전업주부도 경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시대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도 여성의 전문성이나 능력의 인정이, 처우가 남성에 못 미치는 것이 현실입니다. 나의 딸이, 여기 계신 희망과 꿈을 지니신 여성들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 부당함과 폭력에서 자유로운 삶을 펼치시길 기대해보겠습니다. 저희는 저희 자리에서 저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살아낼 겁니다.

 

전국여성노조 상록CC분회 천안지회 구교진 부지회장

캐디로 18년째 근무하면서 매일 새로운 고객을 만납니다. 어떤 고객을 만나느냐에 따라 하루 하루의 노동강도가 달라집니다. 캐디의 신호를 무시하고 공을 쳐 앞 팀이 공을 맞는 등 일명 ‘캐디 무시 사고’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라운딩과 상관없는 캐디의 성별에 대한 품평회를 인사말로 듣고 근무를 시작하는 날도 부지기수입니다. 여자캐디가 향기가 좋다, 여자캐디라서 힘들어도 참을 거야라는 말은 ‘너는 여자 캐디이니 불평 불만을 표현하지 말라’는 압박으로 느껴집니다. 자기들끼리는 고생했다 재밌었다는 인사를 주고받으면서 캐디에겐 인사말 한 마디 없이 꾸깃꾸깃한 지폐를 건네기도 합니다. 얼마 전 한 캐디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정부는 캐디가 특수고용노동자라서, 개인사업자라서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합니다. 고객에게 캐디피를 받는다는 이유로 캐디는 개인사업자라고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캐디는 골프장의 지휘명령에 따라야만 합니다. 회사가 출근하라는 대로 출근하고 쉬라는 대로 쉴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임에도 회사에서는 캐디에게 이중잣대를 내세웁니다. 캐디도 직원과 똑같이 대우해달라고 하면 특수고용노동자라서 안 된다고 하면서,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는 캐디에게 식사를 세 끼가 아닌 두 끼라도 제공해달라고 하면 직원들도 한 끼만 준다며 캐디에게 식사 두 끼를 제공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여성노동자들 모두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함께 연대하면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 김예린 대전분회장

빵이 좋아 빵 만드는 회사에서 제빵기사로 13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큰 파리바게트라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으니 나도 빛나는 것 같았지만, 그 빛은 곧 꺼졌습니다. 빵 만들면서 안 웃으면 안 웃는다고 쫓겨나고 연장수당 요구하면 어린 게 돈독이 올랐다며 건방지다 매장에서 쫓겨났습니다. 새벽부터 오후까지 쉬는 시간도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점심식사도 못하고 쫓기듯 일해 퇴근하면 발이 퉁퉁 붓고 어깨와 손이 잠도 못들 정도로 저려도 쫓겨나지 않으려면 입 다물고 참고 일해야 했습니다. 힘들고 위험한 일을 하면서도 젊은 여성들이 대다수라는 이유로 노동착취를 당하고 임금도 후려치기 당하고 있었고 그건 부당한 것이란 걸 알게 되었고 노동조합으로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동지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어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현장에는 여성 노동자가 97퍼센트인데 진급은 남자만 하는 현실입니다. 왜 여자는 진급이 안 되느냐고 하면 여자는 결혼하고 애 낳으면 그만두니까, 남자는 현장직 급여로 가장노릇하기 힘들다. 여자가 이 정도 벌면 괜찮지 않느냐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원래 이런 건데 왜 너만 유난이냐고 가스라이팅을 당하면서도 뭔가 이상했습니다. 노동조합 활동을 통해 내가 별종이 아님을 깨닫게 됐습니다. 투쟁없이는 쟁취도 없습니다. 우리나라 여성 노동자들이 차별받지 않고 일한 만큼 쟁취할 수 있도록 투쟁하겠습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페미워커클럽 혜리

물가는 오르는데 내 월급만 그대로입니다. 많은 여성에게 최저임금이 곧 최고임금입니다. 가스비는 몇 십만 원 올랐지만 내 월급은 고작 5만원이 올랐습니다. 첫 월급을 200만원 받으면 평생 그렇게 번다는 글도 보입니다. 돈을 더 벌기 위해 투잡을 뛰니 병원비가 더 나갑니다. 그래도 버티고 전문성을 키워서 이직하면 급여가 오를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쓸 수 있는 돈이 없는 사람은, 아니 애초에 일의 전문성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럴 때에는 한 물 갔다고 여겨지는 계급이라는 단어가 너무나 가깝게 느껴지곤 합니다. 사회는 내가 여성일 것을 요구하면서 너무 여성스러우면 조롱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외줄타기를 하는 듯합니다. 나는 그저 모두에게 친절하고 싶었을 뿐인데 이런 내 태도가 성애적으로 비춰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되어 말 한마디 한마디를 곱씹어야 했습니다. 이런 고민 없는 남성 동료가 부러울 때 괴로웠습니다. 가스비와 난방비를 고민하기보다 오늘 저녁 뭐 먹지라는 고민을 하고 싶고, 남자동료와의 관계를 고민하기보다 내가 하는 일을 더 잘하기 위한 고민을 하고 싶습니다. 그러기위해 오늘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민주노총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조합원 정보라 작가

저는 2009년에 박사학위를 따고 2010년부터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한국 최고 명문대의 남자교수가 밥을 사준다고 했습니다. 혹시나 그 학교에서 강의를 맡을 수 있을까 싶어서 그 교수를 만났습니다. 그 교수는 자신과 단둘이 러시아 여행을 가자고 해서 거절했습니다. 저는 그 학교에서 강의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아는 선배는 비슷한 제안을 거절했다가 하던 강의가 짤리기도 했습니다. 제 전공을 보면 교수의 성비가 4:1, 5:1입니다. 나이 많은 여성 비정규직 강사는 해고 1순위입니다. 이것은 차별입니다. 차별을 없애기 위해 노동조합 활동을 해야 합니다. 강사는 대학에 고용되어 연구노동과 강의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입니다. 나는 교수가 될 거니까, 교수들 눈 밖에 나면 정규직이 될 수 없으니까, 이런 비굴한 사고방식을 강사 스스로 버리고 노동자로서 단결해야 합니다. 저들이 요구하는 불가능한 실적을 쌓고 저들의 비위를 맞추고 참고 기다리면 평등하고 정의로운 대학이 저절로 실현되지 않습니다. 저는 2021년에 강의를 그만뒀습니다. 퇴직금, 연차수당, 주휴수당을 받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전 YH무역노조 최순영 지부장

1979년 회사의 위장휴업, 폐업에 반발하며 농성하던 마지막 투쟁 당시 저는 임신 6개월이었습니다. 당시 조사받을 때 담당형사가 “태아교육이 중요하다. 네 애는 태어나면서 투쟁투쟁 할 거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이가 태어나면 투쟁을 안 해도 되는 세상을 만들고자 투쟁했는데 45년이 지난 지금도 거리에서 투쟁해야하는 현실에 가슴이 아픕니다. 6-70년대 고도성장이라는 미명하에 나이 어린 여성 노동자들도 하루 18시간씩 일하며 2-3000원의 급여를 받았습니다. 도시락을 쌀 수 없어 수돗물로 배를 채우고, 먼지 속에서 폐병으로 죽어갔습니다. 여성노동자들은 착취에 굴하지 않고 거리로 나와 나체시위를 하고 똥물세례를 받기도 했습니다. 굳건한 연대로 뭉친 여성 노동자들은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으며 인간다운 삶의 쟁취를 위한 투쟁을 가열차게 이어나갔고, 이는 결국 18년간 이어졌던 독재정권 종말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사회가 많이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발전하지 않는 것이 정치입니다. 그리고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입니다. 빵 값은 올랐지만 빵 만드는 여성노동자의 현실은 여전히 힘듭니다. 덕성여대에선 시급 400원을 올려달라고 투쟁하는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힘든 현실이지만 우리는 스스로 투쟁하고 변화를 도모해가고 있습니다.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투쟁으로 쟁취한 것은 우리를 변화시키고 우리를 성장케 할 것입니다.


[사진설명] 3월 4일 보신각 앞에서 열린 2023 여성노동자대회 현장에서 참여자들이 유리천장 찢기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모든 발언이 끝난 뒤, 여성노동자를 가로막는 유리천장을 우리 손으로 산산조각 깨부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습니다!

고양여성민우회 활동가와 회원들도 산산조각 난 유리천장을 한 조각씩 나눠가지고 제38회 여성대회가 열리는 서울시청광장으로 함께 행진했습니다.

[사진설명] 3월 4일 보신각 앞에서 열린 2023 여성노동자대회 현장에서 찢어진 유리천장 조각들을 손목에 감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작성자: 활동가 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