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쳐 나눈 페미다 소식을 하나에 담아보았습니다.
드라마와 영화를 한 개씩 다루었는데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으니 참고하시고 읽으시길요.
먼저 4월 29일에 다룬 영국 드라마 4부작 ‘소년의 시간’입니다.
이 드라마는 원테이크라는 독특한 촬영기법을 통해 소년이 괴물이 되어가는 동기들을 쫓는 형식을 취했는데요, 시작부터 경찰의 급습에 소변을 지리는 주인공 제이미를 보여주며 과연 저 소년이 잔인한 범죄를 저질렀을까? 의문을 가지도록 시청자들의 혼란을 야기합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며 혼란은 가중되고 핫초코에 샌드위치를 먹으며 여성인 상담사를 조롱하듯 성인 마초처럼 몸집을 부풀려 윽박지르는 제이미를 볼 때는 그의 범죄를 확신하게 되죠. 그리고 시청자는 화면 속 상담사가 압도당한 것처럼 소년 제이미에게 치를 떨며 압도당하게 됩니다.
그래봤자 핫초코에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 13살 소년인데 말이죠.
드라마는 소년 제이미가 소녀 케이티를 죽이게 된 과정을 쫓으며 무너진 교권과 무능한 공권력, 청소년들의 어두운 커뮤니티 문화와 그 문화를 알지도 알려 하지도 않는 어른과의 간극 등을 현실감 있게 보여줍니다. 결국 모두가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현실 속에서 괴물이 되어가는 제이미가 의지할 것이 가부장적인 아버지뿐이라는 게 더욱 서글펐던 드라마, 엔딩 음악을 들으며 그 누구도 탓할 수 없음에 씁쓸함이 들었던 건 왜일까요?

5월 24일에 다룬 두 번째 작품, 일본 영화 ‘괴물’입니다.
국제적 화제를 모았던 영화 괴물은 시작부터 의미심장한 대사를 던집니다.
“돼지가 인간의 뇌를 이식받으면 그 돼지는 인간일까, 돼지일까?”
그리고 영화는 끝날 때까지 모든 장면과 대사 심지어 작은 소품 하나에도 빠짐없이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러하기에 초등학생인 ‘미나토’와 비밀 친구 ‘요리’의 순수함이 오염되어가는 과정들을 모두 보고 난 후에도 장면과 대사 하나하나를 곱씹어 해석하게 되지요.
그렇다면 맨 처음 우리에게 던진 ‘인간의 뇌를 이식받은 돼지’는 인간일까요? 돼지일까요?
영화 속에 제시된 해답은 요리 아버지의 대사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요리는 괴물이야. 인간의 뇌가 아닌 돼지의 뇌를 가지고 있어”
요리는 사실 동성애자이며 친아빠는 그런 요리의 뇌를 돼지의 뇌라 불렀던 겁니다. 동성애라는 병이 나아져야만 떠난 엄마가 돌아올 거라며 아빠는 요리를 겁박했고, 그 학대에 요리는 아마도 인간의 뇌를 이식받는 그럼에도 인간이 되지 못하는 불안한 상상을 했는지도 모르겠네요. 이 학대는 세상으로 확장됩니다. 학부모는 선생을 진실을 은폐하려는 괴물로 규정하고, 선생은 학부모를 눈치 봐야 할 괴물로 대하며, 그 사이에서 아이들은 괴물의 씨앗을 잉태합니다. 어른인 교장 호리는 “사실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아”라며 세상과 타협하지만, 어린아이 요리는 “생각하지 않는 말은 할 수 없어”라며 세상을 직격으로 맞고 말죠. 직격탄을 맞을 만큼 용감하지 못했던 미나토는 어른들에게 질문합니다. “누가 괴물이냐고?” 화장실에 갇힌 요리도 흥얼흥얼 노래합니다. “괴물이 누구야?”라고..
아이들이 왜 세상에 맞아야 하고 왜 세상에 맞을 용기를 내야만 하는 건지, 참으로 슬프기에 아름다운 영화였습니다.
반복하자면 이 두 작품에는 정말 많은 의미들이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여성과 남성을 이분화 시키는 현실적 상황 또한 곳곳에 심어두었죠. 수업 중 남성과 여성을 구분 짓는 명사를 가르친다거나 꽃 이름을 많이 알고 있는 남자아이를 여자아이들이 좋아하지 않는다고 일상에 말해준다거나 하는 그런 것들이요.. 무엇이 되었든 극단으로 구분 짓고 재단해버리는 사회는 소통의 경계를 만들게 되고 그 경계 안에 성장해 가는 인간이 갇히게 되면 결국 괴물이 된다는 메시지가 두 작품을 관통하는 듯도 합니다. 다른 듯 닮아있는 두 작품, 간만에 볼만한 좋은 작품이었던 것 같아 민우회 여러분께도 꼭 한번 보시길 권해봅니다.
-4,5월 후기는 늘 새로운 시선으로 이야기 나눠주시는 ‘도마’님이 작성해주셨습니다.-
7월부터 페미다는 매월 첫째주 화요일에 만납니다. 함께 작품들을 감상하며, 이야기도 나누어요.
7월 모임 : 7/1(화) 오후 6시, 고양여성민우회 교육장
드라마와 영화를 한 개씩 다루었는데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으니 참고하시고 읽으시길요.
먼저 4월 29일에 다룬 영국 드라마 4부작 ‘소년의 시간’입니다.
이 드라마는 원테이크라는 독특한 촬영기법을 통해 소년이 괴물이 되어가는 동기들을 쫓는 형식을 취했는데요, 시작부터 경찰의 급습에 소변을 지리는 주인공 제이미를 보여주며 과연 저 소년이 잔인한 범죄를 저질렀을까? 의문을 가지도록 시청자들의 혼란을 야기합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며 혼란은 가중되고 핫초코에 샌드위치를 먹으며 여성인 상담사를 조롱하듯 성인 마초처럼 몸집을 부풀려 윽박지르는 제이미를 볼 때는 그의 범죄를 확신하게 되죠. 그리고 시청자는 화면 속 상담사가 압도당한 것처럼 소년 제이미에게 치를 떨며 압도당하게 됩니다.
그래봤자 핫초코에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 13살 소년인데 말이죠.
드라마는 소년 제이미가 소녀 케이티를 죽이게 된 과정을 쫓으며 무너진 교권과 무능한 공권력, 청소년들의 어두운 커뮤니티 문화와 그 문화를 알지도 알려 하지도 않는 어른과의 간극 등을 현실감 있게 보여줍니다. 결국 모두가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현실 속에서 괴물이 되어가는 제이미가 의지할 것이 가부장적인 아버지뿐이라는 게 더욱 서글펐던 드라마, 엔딩 음악을 들으며 그 누구도 탓할 수 없음에 씁쓸함이 들었던 건 왜일까요?
5월 24일에 다룬 두 번째 작품, 일본 영화 ‘괴물’입니다.
국제적 화제를 모았던 영화 괴물은 시작부터 의미심장한 대사를 던집니다.
“돼지가 인간의 뇌를 이식받으면 그 돼지는 인간일까, 돼지일까?”
그리고 영화는 끝날 때까지 모든 장면과 대사 심지어 작은 소품 하나에도 빠짐없이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러하기에 초등학생인 ‘미나토’와 비밀 친구 ‘요리’의 순수함이 오염되어가는 과정들을 모두 보고 난 후에도 장면과 대사 하나하나를 곱씹어 해석하게 되지요.
그렇다면 맨 처음 우리에게 던진 ‘인간의 뇌를 이식받은 돼지’는 인간일까요? 돼지일까요?
영화 속에 제시된 해답은 요리 아버지의 대사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요리는 괴물이야. 인간의 뇌가 아닌 돼지의 뇌를 가지고 있어”
요리는 사실 동성애자이며 친아빠는 그런 요리의 뇌를 돼지의 뇌라 불렀던 겁니다. 동성애라는 병이 나아져야만 떠난 엄마가 돌아올 거라며 아빠는 요리를 겁박했고, 그 학대에 요리는 아마도 인간의 뇌를 이식받는 그럼에도 인간이 되지 못하는 불안한 상상을 했는지도 모르겠네요. 이 학대는 세상으로 확장됩니다. 학부모는 선생을 진실을 은폐하려는 괴물로 규정하고, 선생은 학부모를 눈치 봐야 할 괴물로 대하며, 그 사이에서 아이들은 괴물의 씨앗을 잉태합니다. 어른인 교장 호리는 “사실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아”라며 세상과 타협하지만, 어린아이 요리는 “생각하지 않는 말은 할 수 없어”라며 세상을 직격으로 맞고 말죠. 직격탄을 맞을 만큼 용감하지 못했던 미나토는 어른들에게 질문합니다. “누가 괴물이냐고?” 화장실에 갇힌 요리도 흥얼흥얼 노래합니다. “괴물이 누구야?”라고..
아이들이 왜 세상에 맞아야 하고 왜 세상에 맞을 용기를 내야만 하는 건지, 참으로 슬프기에 아름다운 영화였습니다.
반복하자면 이 두 작품에는 정말 많은 의미들이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여성과 남성을 이분화 시키는 현실적 상황 또한 곳곳에 심어두었죠. 수업 중 남성과 여성을 구분 짓는 명사를 가르친다거나 꽃 이름을 많이 알고 있는 남자아이를 여자아이들이 좋아하지 않는다고 일상에 말해준다거나 하는 그런 것들이요.. 무엇이 되었든 극단으로 구분 짓고 재단해버리는 사회는 소통의 경계를 만들게 되고 그 경계 안에 성장해 가는 인간이 갇히게 되면 결국 괴물이 된다는 메시지가 두 작품을 관통하는 듯도 합니다. 다른 듯 닮아있는 두 작품, 간만에 볼만한 좋은 작품이었던 것 같아 민우회 여러분께도 꼭 한번 보시길 권해봅니다.
-4,5월 후기는 늘 새로운 시선으로 이야기 나눠주시는 ‘도마’님이 작성해주셨습니다.-
7월부터 페미다는 매월 첫째주 화요일에 만납니다. 함께 작품들을 감상하며, 이야기도 나누어요.
7월 모임 : 7/1(화) 오후 6시, 고양여성민우회 교육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