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온제나] 3월 책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 - 누구도 혼자가 아니다, 모이고 떠들자

사무국
2023-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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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도서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 표지 이미지


이 책은 베를린에서 활동가이자 저널리스트로 일한 저자가 직접 취재한 여러 젠더 이슈에 대한 글을 모은 책이다. 임금 격차, 임신 중지, 여성공동주택, 퀴어 가족 등 지금 베를린과 한국이 직면한 다양한 페미니즘 이슈를 다루고 있다. 그래서 그럴까. 민우회 회원으로 활동하는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받고 용기를 얻은 시간이었다. 

처음엔 제목이 참 좋아서 골랐는데 혹시라도 해외에 대한 막연한 환상만 심어주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다. 멀리서 보면 다 아름다운 법이니까. 라온제나 멤버들과 읽고 생각하고 나누면서 느꼈는데 그것은 기우였다. 멀리서 있는 페미니스트들의 역사와 활동을 통해 영감을 받고 용기를 얻는 시간이었다. 


#공간

이 책에서 소개된 가장 많은 부분이 여성들의 공간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다. 베를린에서 8-90년대 도시개발계획에 따라 철거하려는 건물을 점거하는 운동이 있었다. 철거 대상 건물에 사는 주민이 주거공간을 지키기 위해 점거한 경우도 있었지만, 사용되지 않고 버려져 있는 빈 건물을 점거한 사례도 많았다. 그 결과로 지금은 다음과 같은 여성들의 공간이 운영되고 있다. 

-마녀의 집 : 여성 건축가가 계획, 여성 거주민 거주. 비어있는 건물을 점거하였고 이후 헥센 하우스 설립해 건물 매입해 페미니즘 공간으로 확장. 

-무지개 공장. : 81년 건물점거 운동 과정에서 생겨난 문화공동체.  당시 한부모 그룹과 노동자, 활동가들이 자조사업을 시작.  거주자의 일자리를 창출함과 동시에 가난한 이들을 위한 문화센터를 만드는 것이 목적. 현재는 카페, 어린이집, 목공소, 자전거 수리 공방 운영

-쇼콜라덴 공장 : 다른 여성과 공동체를 이뤄 살고 싶어 하는 1인가구 여성, 한부모 여성, 레즈비언 등이 모여 폐허가 된 공장을 점거하면서 시작. 여성이 직접 가구를 만들고 파는 공방과 카페, 동네 여성과 소녀를 위한 상담 및 교육센터, 터키식 여성 전용 사우나와 스포츠클럽이 있고 현재 베를린 최대의 여성 클럽. 

-베기네 : 1986년 문을 연 여성 전용 공간.  빈집을 점거하고 재건축한 ‘스콰팅’ 여성 운동가들이 카페와 문화센터로 설립하면서 시작. 여성들의 만남의 장소이자 문화공간.  재즈의 밤, 요가 수업, 작가 크리스타 볼프 및 프란치스카 하우저와 함께하는 문학의 밤, 탱고&록 파티, ‘자유와 메타포’ 정치-철학 모임, 페미니즘 정당 모임, 퀴즈 파티 등

-카페 크랄레(Café Cralle) : 1977년에 육아시설을 갖춘 여성 공간으로 설립. ‘자본주의, 성차별주의, 인종차별주의, 동성애와 트랜스젠더를 향한 혐오 등을 떠나 모든 이들을 위한 아름다운 장소를 지향하며, 이에 어떤 형태의 차별 행위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표방함

-크랄레 : 베를린의 가장 오래된 여성 공동사업체 펍. 여성 회원 모두가 고용 관계가 아닌 평등한 관계에서 일하는 곳. 서로 네트워크를 맺고 일상을 공유

-힝켈슈타인 인쇄소: 여성들이 운영하는 공동체 인쇄소 

-페미니즘 아카이브(FFBIZ) : 1960년대부터 모아놓은 여성운동 관련 사진, 자료, 편지, 신문, 잡지가 정리되어 있는 공간. 페미니즘 도서관 건립이 79년 시의회 선거의 주요 공약이 되어 80년 개장 


과연 공간은 물리적 환경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을 이용하고 활용하는 사람에 따라 공간의 의미와 활력이 달라진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누가 운영하느냐에 따라 같은 카페도 상업적 공간일 뿐일 수도 있지만, 달리 운영하면 다양한 여성들의 네트워크 공간으로서 충분한 역할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니까. 

베를린에서는 난민 여성주의자들이 가이드가 되어 그들의 관점으로 베를린 투어를 하기도 한다. 같은 건물도 누구의 입장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터다. 이런 얘기를 하면서 고양여성민우회 차원에서도 페미니즘 관점에서, 여성주의 역사차원에서 고양시 투어를 하면 어떨까 하는 얘기도 나눴다. 고양여성민우회가 맨 처음 시작될 때는 사무실도 없이 개인 집을 근거로 했다니 이또한 재미있다. 그 이후에 민우회가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모텔반대 활동이나 등등 고양시라는 도시 공간을 우리 입장에서 재조명하는 일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번 세미나 책 ‘여성을 위한 도시는 없다'에는 도시는 콘크리트로 쓰여진 가부장제라고 했다. 그 이후에 고양시에서도 일산 서구청에 있던 여성커뮤니티 센터가 예산 삭감을 이유로 폐쇄되는 일이 벌어졌다. 여성들이 모여서 각종 모임을 하고 공부를 할 수 있는 공간, 무료로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예산 배정의 우선순위에서 밀렸다는 것인데, 여성이 모이고 떠들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 같아서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사진설명] 라온제나 3월 모임은 책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을 읽고 세미나를 진행했다. 책상에 각자의 책과 메모장, 커피가 올려져 있다. 



#연대

다양한 색깔을 가진 여성주의자들이 연대한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일도 있다. 

‘로테 초라’라는 급진페미니스트 그룹은 80년대에 독일에 있는 아들어 기업이 운영하는 백화점 9개 지점에 불을 질렀다. 한국과 스리랑카에 있는 아들러 의류 생산 공장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 조건과 생활환경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였다.실제로 한국 후레아 패션 공장에서는 노조 결성이 금지되어 낮은 임금과 부당 해고에 맞서 싸우기도 어려웠고, 성폭력 성차별에 노출된 상태였다. 결국 독일에서의 이런 강력한 연대투쟁으로 한국 여성 노동자들은 임금 인상을 이루기도 하였다.
싸우는 여성들의 연대는 이뿐이 아니다. 난민과 이주민들이 겪는 폭력에 대한 연대, 전쟁 중 성폭력 사안에 대한 관심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활동 등 다양한 색깔의 페미니즘이 날씨과 씨줄로 엮여서 활동하는 것은 그 자체로 베를린 페미니즘을 보여준다. ‘우익에 반대하는 할머니 모임’을 보면서는 우리도 할머니 페미니스트로서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할머니 페미니스트들의 모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얘기도 나눴다. 


#기술교육 


세미나에서 우리도 한번 도모해보자고 의견이 모아진 부분이다. 집안의 LED 등을 바꾸거나 쓰고 있는 자전거를 스스로 고치는 기술을 갖고 싶다. 독일에서는 2001년부터 매년 4월 전국적으로 ‘걸스데이’ 행사가 열려서 여성 청소년들이 전형적인 여성 직업 세계를 뛰어넘어 다양한 직업 체험을 해볼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비영리단체 ‘바이키지스’(BIKEYGEES e.V.)는 2015년부터 베를린 시내 중심의 자전거 훈련장에서 매주 이주·난민 여성과 소녀를 위한 자전거 수업을 무료로 열고 있다.훈련장에는 실제 도로와 같이 신호등과 교통표지판이 설치되어 있어 독일 교통체계와 자전거 수리 방법도 배울 수 있다.
한국에서도 ‘여기공 협동조합’이 있다. 여성들에게 생활에 필요한 적정 기술 교육을 하는 곳이다. 여성이 트럭을 몰거나 기계를 고치지 못한다는 편견은 사라지고 있다.그런데 여전히 여성들에게 기술교육 기회는 너무 부족하다. 생활에서 필요한 기술 교육부터 시작해 보면 어떨까. 


이 책의 부제는 ‘베를린페미니즘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 말하고 기록하고 싸우지 않는다면 누군가가 선물처럼 안겨줄 수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시간이었다. 더 많은 회원들과 더 많은 활동을 하고 싶다는 소망이 생기는 시간. 


글 작성 : 돌고래(라온제나 이끄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