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국가인권위원회는 ‘저출산’ 핑계로 차별을 옹호하지 말라
- 무주택기간 가점제 기준 차별 진정 기각 결정에 부쳐 -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제2조제8호에 규정된 현행 무주택기간 가점제는 “주택공급신청자의 연령이 30세가 되는 날부터 계속하여 무주택인 기간으로 하되, 30세가 되기 전에 혼인한 경우에는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혼인관계증명서에 혼인신고일로 등재된 날부터 무주택기간을 기산”한다고 규정한다.
2021년 9월 7일, 한국여성민우회는 해당 기준을 나이와 혼인 여부에 의한 차별로서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 진정하였다. 인권위는 2023년 3월 21일, 해당 진정 건이 차별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기각하였다. 우리는 인권위가 통지한 기각 결정 근거가 합당하지 않으며, 차별적 통념에 근거한다고 보고 이를 규탄한다.
우선 나이에 따른 차별 여부 판단에서, 현행 무주택기간 가점제가 20대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아니어서 차별이 아니라는 설명은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고 있다. 한국여성민우회가 무주택기간 가점제 기준을 나이에 의한 차별로 진정한 요지는 만 30세라는 기준 설정에 합리적인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제도적으로 20대 청년과 30대 청년은 모두 민법상 성인으로서 경제·사회적으로 독립된 주체라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 현실적으로도 20대가 별도 가구를 꾸리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20대 청년에게 독립 주거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을 일반화하여 20대 청년과 30대 청년을 다르게 대우하는 규정은 합당하지 않다. 그러나 인권위의 판단에는 이에 대한 고려가 드러나 있지 않다.
무엇보다 나이에 따른 제한이 과도하지 않다며 20대여도 혼인한 경우 무주택기간을 인정하는 또 다른 차별요소를 근거로 드는 점은, 차별적 정상가족주의에 근거한 생애주기 통념이라는 진정 전반의 문제의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함을 드러낸다.
혼인 여부에 따른 차별 여부 판단에서는 법률에 대한 잘못된 해석을 근거로 들고 있으며, 혼인을 특권화하는 차별적 관행을 옹호하고 있다. 인권위는 “「헌법」이 국가로 하여금 적절한 조치를 통해 혼인을 지원하도록 요청하고 있고, 「건강가정기본법」과 「주거기본법」이 국가에 대하여 혼인과 관련하여 주거생활의 영역에서 우선 지원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라며 혼인 여부에 따른 무주택기간 기산의 차별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헌법」에는 혼인을 다른 가족생활과 차별하여 특별히 지원하도록 요청하는 내용은 없다.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라고 하여 국가가 개인의 친밀한 관계를 보장해야 함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건강가정기본법」에도 주거생활과 관련하여 혼인을 국가가 지원하여야 한다는 내용은 없다. 「주거기본법」에는 신혼부부를 주거지원필요계층 가운데 하나로 규정하고 있기는 하나, 이를 혼인 자체에 대한 우선 지원을 명시했다고 해석할 수는 없다. 더하여 주거지원필요계층으로 명시된 집단으로 청년층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들을 혼인 여부에 따라 차등 지원할 근거는 없다.
우리 사회 구성원이 각자 다양한 방식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음에도, 이성애·법률혼 중심의 혼인 관계만을 특권화하는 통념과 제도는 구조적 차별을 낳고 있다. 특히 혼인하고자 하나 법·제도적 관행으로 인해 혼인할 수 없어 일상적 차별과 배제를 경험하는 이들이 존재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차별의 개선을 추구해야 할 인권위가 오히려 기존 특권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것은, 그 역할과 책임에 반하는 행위다.
이번 인권위 결정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여 출산율 제고를 위해 혼인을 장려해야 하는 우리 사회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할 때 지원의 우선순위에 있어서 차등을 둔 것이므로 다른 것을 달리 대우한 경우”라는 언급이다.
보편적인 인권의 존중과 차별 해소를 목적으로 하는 인권위가, 왜 차별 여부를 판단하는 과정에 “우리 사회의 특수한 상황”이라며 “저출산 문제”를 고려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인권위의 책임은 오히려 국가가 주도하는 ‘저출산’ 위기 담론을 통해 기존의 차별구조가 존속하며 인권 침해가 정당화되는 현 상황에 비판적으로 개입하는 일이 아닌가. 인권위는 우리 사회의 평등과 정의 실현의 차원에서 현재의 인구구조 변동 상황을 ’저출산‘ 문제로 규정하는 게 정당한지, 설사 그렇다 할지라도 특정 집단에 대한 배제와 차별을 통해 문제를 해소하려는 시도가 정당한지 질문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또한, 혼인 장려를 통해 출산율이 제고될 수 있다는 전제부터 정상가족주의에 근거한 왜곡된 통념이다. 출산은 법률혼에 뒤따르는 당연한 결과가 아니며, 개인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또한, 동거와 사실혼 및 비혼 등 법률혼 외의 다양한 가족 실천에서 출산과 돌봄이 이루어지고 있다. 만약 출산을 위해 주거를 지원하는 정책에 인권위가 개입하고자 한다면, 통념이 아닌 사회 구성원의 실제 삶에 근거하여 출산과 돌봄을 위한 주거 수요를 파악하고 평등하게 지원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인권위의 역할은 한국 사회의 법·제도·정책·관행에 존재하는 차별적 통념과 이에 따른 인권 침해를 적극적으로 개선하는 것이지, 법·제도를 근거로 차별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인권위는 정상가족주의를 재생산하는 제도와 이에 따른 차별의 개선을 요구하는 진정을, 정상가족주의적 통념을 근거로 대며 기각하는 모순을 드러냈다. 인권위는 차별적이고 반인권적인 근거를 명시한 결정문을 철회하고 사과하라. 그리고 정상가족주의에 따른 차별을 해소하고, 가부장적 체제 유지가 아닌 모든 사회 구성원의 보편적 권리 증진을 위해 힘쓸 본연의 책임을 다하라.
2023년 6월 12일
고양여성민우회 광주여성민우회 군포여성민우회 (사)경남여성회 서울동북여성민우회 원주여성민우회
인천여성민우회 진주여성민우회 춘천여성민우회 파주여성민우회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혼인평등연대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처리 결과 통지 전문 보기
▶▶무주택기간 가점제 기준 차별 진정 진정서 보기
[논평]
국가인권위원회는 ‘저출산’ 핑계로 차별을 옹호하지 말라
- 무주택기간 가점제 기준 차별 진정 기각 결정에 부쳐 -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제2조제8호에 규정된 현행 무주택기간 가점제는 “주택공급신청자의 연령이 30세가 되는 날부터 계속하여 무주택인 기간으로 하되, 30세가 되기 전에 혼인한 경우에는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혼인관계증명서에 혼인신고일로 등재된 날부터 무주택기간을 기산”한다고 규정한다.
2021년 9월 7일, 한국여성민우회는 해당 기준을 나이와 혼인 여부에 의한 차별로서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 진정하였다. 인권위는 2023년 3월 21일, 해당 진정 건이 차별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기각하였다. 우리는 인권위가 통지한 기각 결정 근거가 합당하지 않으며, 차별적 통념에 근거한다고 보고 이를 규탄한다.
우선 나이에 따른 차별 여부 판단에서, 현행 무주택기간 가점제가 20대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아니어서 차별이 아니라는 설명은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고 있다. 한국여성민우회가 무주택기간 가점제 기준을 나이에 의한 차별로 진정한 요지는 만 30세라는 기준 설정에 합리적인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제도적으로 20대 청년과 30대 청년은 모두 민법상 성인으로서 경제·사회적으로 독립된 주체라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 현실적으로도 20대가 별도 가구를 꾸리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20대 청년에게 독립 주거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을 일반화하여 20대 청년과 30대 청년을 다르게 대우하는 규정은 합당하지 않다. 그러나 인권위의 판단에는 이에 대한 고려가 드러나 있지 않다.
무엇보다 나이에 따른 제한이 과도하지 않다며 20대여도 혼인한 경우 무주택기간을 인정하는 또 다른 차별요소를 근거로 드는 점은, 차별적 정상가족주의에 근거한 생애주기 통념이라는 진정 전반의 문제의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함을 드러낸다.
혼인 여부에 따른 차별 여부 판단에서는 법률에 대한 잘못된 해석을 근거로 들고 있으며, 혼인을 특권화하는 차별적 관행을 옹호하고 있다. 인권위는 “「헌법」이 국가로 하여금 적절한 조치를 통해 혼인을 지원하도록 요청하고 있고, 「건강가정기본법」과 「주거기본법」이 국가에 대하여 혼인과 관련하여 주거생활의 영역에서 우선 지원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라며 혼인 여부에 따른 무주택기간 기산의 차별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헌법」에는 혼인을 다른 가족생활과 차별하여 특별히 지원하도록 요청하는 내용은 없다.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라고 하여 국가가 개인의 친밀한 관계를 보장해야 함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건강가정기본법」에도 주거생활과 관련하여 혼인을 국가가 지원하여야 한다는 내용은 없다. 「주거기본법」에는 신혼부부를 주거지원필요계층 가운데 하나로 규정하고 있기는 하나, 이를 혼인 자체에 대한 우선 지원을 명시했다고 해석할 수는 없다. 더하여 주거지원필요계층으로 명시된 집단으로 청년층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들을 혼인 여부에 따라 차등 지원할 근거는 없다.
우리 사회 구성원이 각자 다양한 방식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음에도, 이성애·법률혼 중심의 혼인 관계만을 특권화하는 통념과 제도는 구조적 차별을 낳고 있다. 특히 혼인하고자 하나 법·제도적 관행으로 인해 혼인할 수 없어 일상적 차별과 배제를 경험하는 이들이 존재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차별의 개선을 추구해야 할 인권위가 오히려 기존 특권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것은, 그 역할과 책임에 반하는 행위다.
이번 인권위 결정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여 출산율 제고를 위해 혼인을 장려해야 하는 우리 사회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할 때 지원의 우선순위에 있어서 차등을 둔 것이므로 다른 것을 달리 대우한 경우”라는 언급이다.
보편적인 인권의 존중과 차별 해소를 목적으로 하는 인권위가, 왜 차별 여부를 판단하는 과정에 “우리 사회의 특수한 상황”이라며 “저출산 문제”를 고려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인권위의 책임은 오히려 국가가 주도하는 ‘저출산’ 위기 담론을 통해 기존의 차별구조가 존속하며 인권 침해가 정당화되는 현 상황에 비판적으로 개입하는 일이 아닌가. 인권위는 우리 사회의 평등과 정의 실현의 차원에서 현재의 인구구조 변동 상황을 ’저출산‘ 문제로 규정하는 게 정당한지, 설사 그렇다 할지라도 특정 집단에 대한 배제와 차별을 통해 문제를 해소하려는 시도가 정당한지 질문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또한, 혼인 장려를 통해 출산율이 제고될 수 있다는 전제부터 정상가족주의에 근거한 왜곡된 통념이다. 출산은 법률혼에 뒤따르는 당연한 결과가 아니며, 개인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또한, 동거와 사실혼 및 비혼 등 법률혼 외의 다양한 가족 실천에서 출산과 돌봄이 이루어지고 있다. 만약 출산을 위해 주거를 지원하는 정책에 인권위가 개입하고자 한다면, 통념이 아닌 사회 구성원의 실제 삶에 근거하여 출산과 돌봄을 위한 주거 수요를 파악하고 평등하게 지원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인권위의 역할은 한국 사회의 법·제도·정책·관행에 존재하는 차별적 통념과 이에 따른 인권 침해를 적극적으로 개선하는 것이지, 법·제도를 근거로 차별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인권위는 정상가족주의를 재생산하는 제도와 이에 따른 차별의 개선을 요구하는 진정을, 정상가족주의적 통념을 근거로 대며 기각하는 모순을 드러냈다. 인권위는 차별적이고 반인권적인 근거를 명시한 결정문을 철회하고 사과하라. 그리고 정상가족주의에 따른 차별을 해소하고, 가부장적 체제 유지가 아닌 모든 사회 구성원의 보편적 권리 증진을 위해 힘쓸 본연의 책임을 다하라.
2023년 6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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