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일상이 두려운 공간이 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서로의 안전망이 될 것이다 : 신당역 여성노동자 스토킹살해사건에 부쳐

관리자
2022-09-16
조회수 468


 

 2022년 9월 14일 오후 9시경 신당역 화장실에서 불법촬영/협박 및 스토킹범죄로 9년형을 구형받은 가해자가 1심 선고 1일 전 입사동기이자 역무원인 피해자를 살해했다. 2019년부터 가해자는 피해자를 스토킹했으며, 2021년 10월 피해자는 가해자를 불법촬영 및 유포협박 건으로 고소했다. 경찰과 검찰은 구속수사를 요청했지만 법원은 ‘주거가 일정하고 도주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하였다. 가해자는 10월 고소 이후에도 스토킹범죄를 지속하였고, 올해 1월 피해자는 가해자를 스토킹처벌법으로 고소했지만, 가해자 구속수사는 청구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스토킹범죄에 대한 무지로 인해 언제까지 여성들이 숨져야 하는지, 우리는 슬픔과 분노로 그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1. 법원이 경찰의 구속영장을 기각함으로써 예방할 수 있었던 범죄가 일어났다.

 

 법원은 피해자에 대한 추가범죄 및 실질적 위협의 가능성을 구속 사유 심사 시 적극 고려했어야 한다. 2021 여성폭력실태조사에 따르면 여성폭력경험자 중 48.6%가 중첩피해를 경험한다고 한다. 하나의 범죄를 겪은 사람이 스토킹/신체적/정서적 폭력 등을 함께 겪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가해자의 스토킹범죄는 2019년부터 지속됐으며 이 연장선상에서 피해자는 불법촬영 및 협박 피해가 있었다. 추가범죄가 충분히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법원은 가해자 도주여부나 가해자 주거불안정 여부가 아닌, 여성폭력의 특수성 및 스토킹범죄의 특성과 사건의 지속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구속심사 시에 적용했어야 한다. 법원은 불구속수사여부를 판단할 때 ‘피해자의 안전’을 고려했는가? 법원의 판단은 한순간이지만, 그 여파는 피해자의 삶에 적용된다. 법원은 범죄에 대한 ‘판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예방’의 의무도 있음을 적극적으로 인지 해야 한다.

 

2. 경찰은 ‘피해자가 요청하지 않았다’며 스토킹 범죄에 소극적으로 대처해 추가범죄를 막지 못했다.

 

 2018-2019년 형사재판 1심 판결문을 검토했을 때 파트너에 의한 살인 및 살인미수판결 433건 중 40%가 사건 전 스토킹 기간이 존재했다.*

 경찰은 2019년부터 스토킹 범죄가 지속된 것뿐만 아니라 불법촬영, 협박과 같이 추가범죄가 동반된 점을 미루어 ‘피해자가 한 달의 보호조치를 연장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적극적 조치를 진행했어야 한다. 사건의 특성과 위험성에 대해서 더 잘 알고 피해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은 경찰이다. 피해자가 안전망을 요청하는 주체가 아니라, 경찰이 피해자에게 안전망을 제공해야 하는 주체이다.

또한 2022년 1월 피해자가 스토킹피해를 고소한 후 경찰은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았다. 하지만 추가피해로 인한 고소가 이어진 것이라면, 게다가 그 피해가 스토킹범죄로 인한 것이라면 경찰은 다음 피해를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어야 한다.

 이번 사건에서 법원과 수사기관이 보여준 안일한 대응은 피해자들에게 사법적 절차를 밟는 과정에 대한 깊은 불신을 필히 가져올 것이다. 스토킹범죄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가 있는 ‘스토킹처벌법’은 작년 10월에서야 시행됐다. 하지만 법이 있어도 사법처리과정이 가해자를 오히려 자극하지는 않을지 두려워하는 피해자가 대부분이다. 이번 대응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통렬히 깨닫고, ‘사법적 절차’에 대한 이 합당한 불신을 어떻게 신뢰로 바꾸어나갈 것인지 법원과 수사기관은 책임지고 고민해야 할 것이다.

 

3. 서울교통공사는 여성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하지 않았다.

 

 서울교통공사는 비상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인원도 고려하지 않았다. 가해자는 업무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언제 피해자가 혼자 업무를 진행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피해자가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인 2인 1조 근무가 필요했다.

 

 서울교통공사는 경찰이 불법촬영건 수사개시를 통보하자 지난해 10월 13일 가해자를 직위해제했다. 교통공사에서는 “스토킹범죄임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적극적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교통공사는 지난해 가해사실을 확인했을 때, 그것이 처음 발생한 사건이었는지, 피해자를 위한 조치가 필요했던 사안은 아닌지, 가해행위 중단을 위한 교통공사의 책임은 무엇인지 전반적인 역할 점검을 했어야 한다. 공동체의 역할과 책임은 사법적 판단과 동반되어야 한다.

 

 “가해자는 착한 사람인데 누가 신고했을까”라는 말을 직접 듣는 상황에서 피해자가 스토킹피해가 있었음을 회사나 동료에게 ‘먼저’ 알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교통공사는 피해자의 피해사실이 소비되는 일을 적극적으로 막았어야 한다. 교통공사가 방임하고 있는 상황에서 피해자는 회사에 적극적 요청을 하는 것이 어려웠을 것이다.

 

서울교통공사의 안일함과 소극적 태도, 그리고 성평등하지 않은 조직문화가 가해자의 범죄를 용인했다.
서울교통공사는 성폭력과 스토킹범죄에 대한 구성원들의 성인지 감수성 제고와 관련 사건을 내부적으로 처리할 역량과 체계가 있는지 파악하고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이번 신당역 스토킹범죄 살인사건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막을 수 있었던’ 일이라는 안타까움과 분노, 슬픔이 함께 한다. 이는 ‘사법적 절차’를 거치고 있었음에도 ‘일하는 도중에’ ‘공공장소’에서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편안한 공간이, 어느 누군가에게는 악몽과 같은 곳으로 변하는 것을 성폭력사건을 지원하면서 목격해왔다. 또한 그 안전하지 않은 공간이 안전해지기 위해 성폭력 피해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해왔다. 그 노력을 우린 계속하려 한다.

 

 이번 사건 역시 ‘극악무도한 가해자’가 저지른 ‘개별범죄’가 아니다. 개인화시키는 논리들에 반대한다. 구조적으로 여성들이 어떤 폭력에 노출되어있고, 노동자로서 어떤 조건에서 일하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안전한 일터가 될 수 있도록 직장 내에서 성평등한 조직문화는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을지도 고민해야 한다.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주변인들에게 끊임없이 피해자의 상황을 묻는 스토킹범죄가 끊어질 수 있도록 가해자와의 연결을 피해자와 함께 차단할 것이다. 일상이 두려운 공간이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서로의 안전망이 되어줄 것이다. 그 안전망을 함께 구축할 수 있도록 경찰, 검찰, 법원, 정부는 현실을 정확히 인지하고 책임을 다하라.

모두의 평안과 고인의 명복을 빈다.

 

 

2022.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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